K팝, K드라마, K무비에 이어 요즘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이 'K캐릭터', 즉 한국산 캐릭터다.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아기상어', '뽀로로', '뿌까', '라바' 등은 모두 한국이 낳은 캐릭터들이다.
그만큼 한국 캐릭터들은 전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꼽힌다. 박준홍(38) 대표가 2015년 창업한 핸드허그는 대표적인 K캐릭터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창작자들이 캐릭터를 상품화해 판매할 수 있는 장터를 제공하는 그는 최근 K캐릭터 수출에 나섰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K캐릭터의 수출 전략을 들어 봤다.
박 대표가 선보인 '젤리크루'는 창작자들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장터다.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를 이용한 전자상거래와 실제 공간에 매장을 개설해 판매하는 등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지원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서울 영등포, 신촌, 강남 등 8개 직영매장과 교보문고, 롯데마트 등에서 대신 판매하는 위탁매장을 전국에 350개 갖고 있다. 앱 이용자는 월 30만 명이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10, 20대 여성 비중이 85%입니다."
젤리크루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창작 활동 자체가 상품이 된다. "디자이너의 그림을 빵, 음료, 화장품 등 다양한 상품에 적용해요. 사진가들의 잘 찍은 사진은 엽서나 공책 표지, 깔개, 쿠션 등으로 만들 수 있죠."
창작자들이 상품을 만들려면 젤리크루에 입점 신청을 하고 심사를 거쳐야 한다. “약 한 달간 내부 심사를 거쳐 하루 한 팀만 입점시켜요. 디자인 수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팬 등 인지도를 확인하죠. 입점을 희망하는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반드시 SNS 계정을 갖고 있어야 해요. SNS 계정을 창작자의 작품집(포트폴리오)으로 봐요.”
핸드허그는 창작자들의 캐릭터 상품을 배송까지 해준다. 이를 위해 경기 고양시에 물류센터 4개를 운영한다. "창작자들이 상품을 물류센터로 보내면 여기서 구매자에게 배송해요. 구매자에게 배송하는 비용은 핸드허그가 부담하죠."
편한 만큼 젤리크루를 이용하는 창작자들은 개인과 기업 포함 540팀에 이른다. 이들이 판매하는 상품 종류만 4만5,000종이다. "한국에 창작자가 약 5만 명인데 그중 500팀이 젤리크루에 있어요. 이들이 만든 캐릭터 상품은 1,000원부터 수만 원대까지 다양해요. 이 가운데 문구류가 전체 판매의 50% 이상이고 휴대폰 케이스, 스티커, 컵, 그릇, 우산, 가방 등 상품 종류가 다양하죠."
경쟁력 높은 캐릭터를 만드는 15개 창작팀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준다. "상위 5% 창작자들을 패밀리 크리에이터로 분류해 이들에게 상품 제조사까지 연결해 줘요."
이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베스트 크리에이터가 되면 상품 기획 및 마케팅까지 핸드허그에서 비용을 들여 대신해 준다. 대표적 캐릭터가 '꽃카'와 '망붕이'다. 창작자 영이의 숲이 만든 꽃카 캐릭터는 지난해 10월 '꽃카빵'으로 개발돼 전국 CU 편의점에서 월 40만 개 이상 팔렸다. "꽃카빵은 5분기 동안 200억 원 이상 거래액을 올렸어요. 올해 말까지 거래액을 300억 원 이상 예상해요. 토끼를 의인화한 망붕이도 꽃카빵처럼 상품화를 통해 연간 100억 원 이상 거래액을 기대해요."
창작자들은 젤리크루 서비스가 시작된 2019년 10월 이후 누적으로 80억 원 이상 수익을 정산받았다. "올해 3분기에 누적 정산액이 100억 원을 넘을 겁니다."
패밀리 크리에이터 이상 되면 적잖은 돈을 번다. "꽃카빵 창작자 2명은 연 3억 원 이상 수익을 가져가요. 연 1억 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창작자도 6팀 이상이죠."
창작자들이 잘되면 핸드허그도 돈을 번다. "젤리크루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창작자들에게 판매비의 30%를 수수료로 받아요. 연예기획사와 비슷하죠. 인기 캐릭터 창작자는 연예기획사의 스타처럼 수수료를 덜 내요."
이와 함께 매출 향상을 위해 의류 사업도 한다. MZ세대를 위한 '아카이브 볼드' '스팀피니' '버머초어스' 등 다양한 의류를 개발해 판매한다. "내부에 패션 사업부가 따로 있어요. 디자인은 직접 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기죠."
이 옷들은 허니제이, 아이키, 훅 등 유명 춤꾼들이 즐겨 입으며 유명해졌다. 요즘은 아이브, 에스파 등 아이돌도 즐겨 입는다.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나온 춤꾼들과 협업해 인기를 끌었어요. 이들이 방송에 단체로 옷을 입고 나와 유명해졌죠."
목표는 K캐릭터의 수출이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지난 2월 일본 유통업체 캔디아고고와 제휴를 맺고 일본에 진출했다. 캔디아고고는 BTS, 블랙핑크 등의 협업 상품을 유통한 업체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한국 캐릭터를 활용한 첫 상품이 곧 나온다. 주인공은 웅크린 선인장이라는 뜻의 '웅장'이라는 캐릭터다. "캔디아고고에서 웅장을 선택했어요. K드라마와 K팝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으니 한국 색깔이 많이 나는 캐릭터를 원했죠."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K캐릭터 수출을 준비 중이다. "중국에서 협력 상대와 사업을 시작했고, 베트남도 빠르면 이달 이후 법인을 만들어 진출할 계획입니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에 한국 캐릭터를 수출해야죠."
이렇게 되면 매출도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이 업체는 매출이 2020년 23억 원, 2021년 51억 원, 지난해 126억 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 원이다. 2021년 이래 영업이익도 나고 있다. "올해는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올릴 계획입니다."
이에 힘입어 투자도 누적으로 110억 원을 받았다. "AG인베스트먼트, 한화생명보험, 신한캐피탈 등에서 받았죠."
전남 과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박 대표는 2009년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선배의 총학생회장 출마를 돕다가 이듬해 출마하게 됐어요."
총학생회장 시절 그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뉜 학생 사회의 이분화 구조를 깨뜨리는 것에 중점을 뒀다. "정치적 주장이 강한 운동권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만 조직력을 발휘하고, 학생 복지에 관심이 많은 비운동권은 조직력이 약해 일을 잘못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극복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압도적 조직력을 갖춰 적절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학생 복지에도 신경 쓰는 것이 중요했죠."
70% 이상 득표로 당선된 그는 100명 이상의 큰 학생회 집행부를 꾸렸다. "학보 광고 등으로 수익 사업을 하며 비용을 마련해 학생 복지와 정치적 목소리를 치우침 없이 가져갔죠. 이를 따라한 총학생회들이 나오면서 롤 모델이 돼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죠."
그 바람에 정치권 제의를 많이 받았다. "당시 여야 모두에서 입당 제의를 했어요. 그런데 정치인보다 기업인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라고 생각해 기업을 택했죠."
처음부터 그는 창업을 염두에 두고 2013년 삼성전자에 들어갔다. "창업을 위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일 배울 게 많은 1등 회사에 지원했죠. 신입사원 때 삼성의 합숙연수 프로그램(SVP)에서 1등을 해서 반도체 사업부에 배치돼 전략 기획을 담당했어요."
2년간 근무한 삼성전자는 큰 도움이 됐다. "기본 업무 요령부터 비즈니스 매너, 경쟁사 분석 방법, 세계 경제의 동향 파악 등 많은 것을 배웠어요."
박 대표는 핸드허그를 창업하며 3가지 기준으로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고 회사와 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며 확실한 1위 사업자가 없는 사업 아이템을 찾았어요. 그게 콘텐츠 사업이었죠."
하지만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제조사와 콘텐츠를 연결해 주거나 기획상품을 만들어 주는 사업을 했는데 잘 안됐어요. 젤리크루는 세 번의 실패 끝에 찾은 아이템이에요."
젤리크루 사업 전 직원들 월급을 밀릴 수 없어 10억 원의 개인 빚까지 졌다.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자려고 누워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젤리크루가 자리를 잡아 개인 빚을 절반 정도 갚았죠."
그는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스타트업 창업을 후회하지 않는다. "투자받으러 다닐 때 왜 삼성을 그만뒀냐는 소리를 수백 번 들었어요. 그래도 창업은 잘 했어요. 창업은 직업이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죠."
그는 책임감을 스타트업 창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창업을 하면 다른 사람과 그의 가족 생계까지 책임져야 해요. 그러니 창업가는 개인의 삶을 헌신적으로 투자해야죠. 그런 의지를 가지면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요."
끝으로 꿈을 물었다. "한국 기업의 1세대인 삼성과 현대, 2세대 네이버와 카카오에 이어 다음 세대인 3세대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