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가기 어려운 10대 딸을 둔 내게 '휠체어 접근 가능 장소정보 구축'은 가장 큰 관심사다. 이런 정보가 아예 대형 지도 플랫폼에 들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카카오맵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모은 '모두가이동할지도'라는 코너가 만들어졌다며 시민들에게 경사로를 비롯해 휠체어 접근 가능 정보수집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 제안이 카카오로부터 들어온 거다.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 경사로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캠페인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메시지를 보내 왔다. "이거 등록하려고 15분 동안 주변을 살폈는데 우리 동네엔 턱이 없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요." "경사로가 엄청 좁은데 이거 휠체어로 갈 수 있나요?"
이렇게 휠체어 접근정보에 관심을 갖다 보면 '휠체어 눈높이의 눈'이 생긴다. 내가 속한 '무의'(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만들려는 공동체)에는 서울 지하철역 주변 휠체어 접근정보를 모으는 전문 리서처들이 있다. 벌써 100개역 주변 리서치를 마쳤다. 한 리서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빌딩 관상이 보여요.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지 없을지 빌딩 외관만 봐도 감이 와요." 부자 동네라고 해서 장애인 화장실이 다 잘 갖춰져 있지는 않다. 번화가라도 오래된 건물을 겉만 수리한 경우는 장애인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변두리라고 해도 전면적으로 재개발했다면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접근성 리서치를 오래 하다 보면 물리적 접근성은 물론 심리적 접근성을 판단하는 감도 생긴다. 내 딸이 최근에 발견한 심리적 접근성의 새로운 기준은 '비건 전문 음식점'이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음식점들은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동네의 낡은 건물에 세 들어 있어서 접근성이 대부분 좋지 않다. 그러나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음식점은 휠체어 접근성이 미비하면 미안해하고, 심지어 일부는 적극적으로 경사로 설치를 고민하기도 한단다. 왜 그럴까?
의아하던 와중에 지난 6월 안국동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고기와 비건 음식을 같이 파는 곳이었다. 턱은 없었지만 테이블이 3개 정도밖에 없어서 매우 좁은 매장이었다. 사장님에게 "여기 휠체어 들어올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물론이죠. 저쪽 의자를 빼드릴게요"라고 답했다.(보통 좁은 매장은 '휠체어가 들어오면 좁아서 좀 힘들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매장을 둘러보고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매장 앞에는 아랍어로 '할랄'이라고 적혀 있었다. 종교상의 이유로 할랄 푸드를 먹어야 하는 이들에겐 북촌의 그 수많은 음식점 중에서도 이곳이 오아시스 같았을 거다. 매장 벽에는 외국인 손님들이 남긴 감사 메시지가 적힌 메모지로 가득했다.
딸이 먹을 비건 음식을 기쁘게 포장해 나오며 생각했다. 마이너리티(소수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마이너리티들끼리는 교차되는 공감이 있게 마련이라고. 꼭 비건 지향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어느 공간에서는, 또는 삶의 어느 순간에서는 마이너리티가 된다고.
'모두가이동할지도'에는 엄청나게 많은 휠체어 접근 데이터가 모이진 않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접근성 데이터를 모으려고 시도했던 많은 이들, 특히 이전에 휠체어나 유아차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시민들이 접근성 리서치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는 거다. '마이너리티의 관점'을 가진 이가 늘어나면 우리 사회의 '심리적 접근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심리적 접근성이 확장되면 물리적 접근성을 확대할 기반이 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