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독지가의 630억 기부… 대학이 분발할 때다

입력
2023.06.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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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가 익명의 독지가에게서 630억 원을 기부받았다고 한다. 고려대 개교 이래 단일 기부로 최고 액수다. 국내 전체 대학을 통틀어도 2020년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의 카이스트 기부(766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대학 측은 “대한민국 도약을 위해 대학이 분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국내 대학에 기업인이나 독지가들의 크고 작은 기부가 이어진다. 한 기업인은 5월 “미래 사회 인재를 양성해 달라”며 모교인 성균관대에 100억 원을 기부했고, 1월엔 경기대가 한 기업과 총 100억 원 규모의 기부 약정을 맺었다. 최근엔 익명의 스님이 동국대에 인재양성 장학기금 3억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대학에 큰돈을 선뜻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기부자들이) 큰돈은 사사로운 정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쓴다”고 했다. 고려대 익명 독지가 말처럼 대학이 사회를 위해 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분발해 달라는 채찍의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변화는 더디다. 영국 QS의 세계대학평가(2023)에서 국내 대학은 50위 안에 단 1곳(서울대)만 있을 뿐이다. 첨단산업에서 우리의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대학은 홍콩을 제외하고도 4곳이나 포진해 있다. 국내 대학들은 모든 전공과 학과가 존재하는 수명 다한 백화점식 교육에 여전히 매달린다. 대학마다 특색이 있을 리 없다. 적립금은 쟁여놓은 채 투자엔 인색하다. 15년째 대학 등록금을 옭아매고 정원 규제를 놓지 않는 정부의 발목잡기도 한몫을 한다. 이러니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우수 인재 양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 있는 건 막대한 기부금 덕이 크다. 하버드대의 경우 보유한 기부금 총액이 360억 달러(약 47조 원)라고 한다. 대학이 기부금을 마중물 삼아 과감한 혁신을 하고 그래서 대학 기부 문화가 더 활성화되는 선순환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