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5구 발견, 한강 투신 비극 없어야"... 구조 '최후 보루' 어민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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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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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길 바랄 뿐이죠.”

한강하구 어민 임정욱(68) 고양 행주어촌계 민간인해양구조대장은 한강 투신자를 구조하는 최후 보루다. 이곳은 서해와 맞닿아 있어 실종자 수색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불린다. 시민들은 한강을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안식처로 생각하지만 임 대장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는 지난해에만 시신 5구를 발견했다. 30년 동안 한강어부로 살면서 경찰에 넘긴 투신자 시신은 30구가 넘는다.

긴 세월만큼이나 감정이 무뎌질 법도 하지만, 지금도 변사체를 마주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임 대장은 22일 “지난해 3월 아침 조업을 하다가 방화대교 아래 물 위에 떠 있는 30대 여성 시신을 발견했는데 나이가 어려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행주어촌계에는 50여 명의 한강하구 어부가 소속돼 있다. 이들 누구나 우연이든, 구조 활동에서든 변사체를 목도한 경험이 있다. 밀물과 썰물 때를 정확히 꿰고 있는 데다, 수십 년간 몸에 밴 뛰어난 수색 능력 덕분에 해양경찰과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요청을 해온다.

이달 16일 새벽 가양대교 인근에서 물에 빠진 고교생을 구조한 어부 김홍석(65)씨도 지금까지 시신 20여 구를 찾아 경찰에 인계했다. 2016년 9월 방용훈 전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부인 이모씨를 가양대교에서 발견한 것도 그였다. 김씨는 “시신만 발견하다 살아 있는 학생을 구조하기는 처음”이라며 뿌듯함을 표했다.

“오전에 구조한 50대 중소기업 사장이 같은 날 저녁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의 간곡한 요청으로 장맛비가 내리는 밤에 강에 뛰어들어 변사체를 찾아 넘겼다” 등 어민들 각자 절절한 사연 하나씩은 마음속에 품고 산다.

시신을 찾아내는 안타까움만 있는 건 아니다. 어민들은 인명구조 현장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5월 23일 오전 행주대교 인근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성을 배를 타고 출동해 구조하는 등 해마다 3~5명의 목숨을 살리고 있다.

어민들의 소망은 단 하나. 더 이상 투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이 물에 잠기면 바로 솟아오르지 않는다. 사체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야 부력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대개 심하게 훼손돼 있어 인계받는 유족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민 심화식(69)씨는 “몸이 물에 불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때가 많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가족을 보는 것도 고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민들의 기대와 달리 매년 한강 투신 사고는 늘고 있다.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시 관할 20개 한강 교량에서 발생한 투신 사고는 2018년 422건에서 2021년 615건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투신 사망자도 61명이나 나왔다.

폐쇄회로(CC)TV 설치 등 극단적 선택을 막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민 한국해양구조협회 서울시협회장은 “다양한 문제로 투신을 결심했더라도 대부분 몸을 던지기 전 머뭇거린다”며 “이런 특이 행동을 즉각 포착할 수 있게 CCTV 설치 대수를 늘리고, 다리 난간도 높이는 등의 조치가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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