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피해자 탓" 성폭력 왜곡 통념 여전...여성 63% "밤길 두렵다"

입력
2023.06.21 16:51
여가부 2022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46%는 "성폭력 노출 심한 옷차림 탓"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성인 남녀 10명 중 3명 이상은 성폭력에 대한 이 같은 왜곡된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가족부가 만 19~64세 남녀 1만2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3~12월 실시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내용이다.

여가부가 21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통념에 관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6.1%는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32.1%였다.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까지 허용한다는 뜻이다'도 31.9%가 동의했다. '술을 마시고 하는 성적 행동은 실수로 용납될 수 있다'는 응답은 13.2%였다.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39.7%나 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로 유죄를 받은 숫자는 성폭력범죄로 처분을 받은 숫자의 0.4%(2017, 2018년 기준)에 불과하나 '성폭력 무고가 많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성폭력 무고가 많다는 인식은 30대 남성이 43.5%로 20대 남성(40.9%)이나 40대 남성(41.2%)보다 높았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라는 인식을 가진 응답자는 52.6%에 달했으나 실제로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2.6%만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73.3%)이라는 응답이 많았지만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31.3%)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여성 응답자들이 특히 높았다. '밤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두려웠다'는 여성은 63.4%였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섭다'(52.9%), '택시나 공중 화장실 등을 혼자 이용할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걱정한다'(51%) 등 여성 절반 이상이 외출뿐 아니라 집에 있는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사를 실시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진은 "2022년 조사 결과 전반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 피해자다움에 대한 인식,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돌리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며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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