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3학년인 A군 부모는 자녀가 같은 반 B군에게 목이 졸리는 등 석 달 동안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학교폭력으로 신고해 학교 전담기구(학교폭력에 관한 1차 조사 기구)에서 조사가 시작됐고, 가해자 측이 사과하는 등 피해 사실이 인정됐다. 조만간 관할 교육청에서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A군 부모는 최근 학교로부터 자신의 자녀도 학교폭력 가해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B군이 자신도 학교폭력 피해자라며 신고한 것이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이른바 ‘맞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A군 부모는 18일 B군의 신고는 보복 성격이 짙다고 호소했다. 신고는 ‘A군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B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자 궁금하게 여긴 다른 반 친구가 A군에게 이유를 물었고, A군이 “학폭 관련”이라고 답하자 B군이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에 따라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가 원할 경우 최대 3일까지 가해자를 분리 조치하도록 돼있다.
A군 부모는 “몇 달을 당한 우리 아이를 한순간에 가해자로 만들었다. 정말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B군 부모는 “상대 아이가 우리 아이의 ‘학폭’을 소문 내서 이를 전해 들은 아이가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B군이 받은 정신적 피해가 학교폭력에 해당할 지는 학교 전담기구 조사를 통해 1차적으로 규명될 예정이다.
피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가ㆍ피해자 ‘즉시 분리’ 제도가 오히려 ‘보복 신고’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리 원칙을 노리고 피해학생도 등교를 못 하도록 가해학생들이 ‘묻지마’ 신고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얘기다. A군만 해도 사흘간의 분리 조치를 통보받았다.
학교폭력 전문인 법률사무소 사월의 노윤호 변호사는 “맞신고가 들어와 분리 조치까지 받으면 피해 부모와 학생이 두려워서 협상하려 한다는 심리를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서울의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도 “(맞신고)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며 “나중에 학폭위에선 ‘조치 없음’으로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가해자 측에서 즉시 분리 조치를 ‘주홍글씨’로 여기는 탓에 화해 가능성을 아예 닫아 버린다고 지적한다. 학폭위가 열려 잘못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처벌받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송헌의 신은혜 변호사는 “즉시 분리가 화해 기회를 줄여 역신고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정순신 방지법)’ 개정안엔 현행 최대 3일인 분리 기간을 최대 7일로 늘리는 내용도 담겨 있는데,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학교폭력 전문가들은 피해학생 보호라는 취지는 살리면서도 보복 신고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신고에 따라 무조건 분리 조치하기보단 학교장이 가해학생의 선도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면 출석정지를 하는 현행 학폭예방법 제17조의 ‘긴급조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낫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학교장 재량으로 내릴 수 있는 긴급조치 제도만 잘 활용해도 꼭 필요한 분리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