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에는 오픈 1시간 전부터 50여 명이 몰려들었다. 명품백을 사기 위한 '오픈런' 행렬이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굿즈 팝업스토어에서 '스즈메의 보물상자'를 구매하려는 대기줄이다. 소설책, 포스터 등으로 구성된 100개 한정판이었는데 1인당 1개로 제한을 했음에도 조기 품절됐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7일까지 매일 다른 한정판 굿즈를 판매했는데 대부분 문 열자마자 다 팔렸다"고 전했다.
#"'포터 탱커' 다들 어디서 사셨나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 가방 브랜드 '포터' 구매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글이 쏟아진다. 가수 지드래곤이 즐겨 신는다는 일본 운동화 브랜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의 인기도 뜨겁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2만3,000개를 넘길 정도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는 자랑하고 싶은 신발이 됐다.
4년 동안 이어진 '노재팬' 속에서 일본 제품을 찾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일본 브랜드 매장에 발을 들인다고 눈총을 받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맥주 시장이 특히 눈에 띈다. 12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4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67% 급증한 307만4,000만 달러다. 일본 맥주는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가 시작한 2019년 7월부터 수입이 줄었는데 4년 만에 다시 상승세를 탔다.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하는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캔'는 7월 정식 출시를 앞두고 지난달 편의점에 한정 판매됐는데 대부분 매장이 입고 하루 만에 품절 대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2차 발주에서 일부 회사는 발주 물량을 한 점포당 여섯 개들이 묶음으로 제한했다.
편의점 CU와 GS25는 1~5월 일본 맥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9.1%, 331%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2020~21년 동안 일부 점포에서는 일본 제품을 아예 뺐는데 지난해부터 수요가 점차 풀리면서 발주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여름 '포켓몬빵'의 흥행 이후로 일본 캐릭터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상품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SPC그룹은 4월 일본 캐릭터 산리오를 앞세운 '산리오캐릭터즈 빵' 10종을 내놓았는데 일주일 만에 100만 개가 팔렸다. 편의점은 올 초부터 CU '짱구맥주', 세븐일레븐 '도라에몽 빵', GS25 '슈퍼마리오 빵·음료' 등 레트로 감성을 공략한 일본 캐릭터 제품이 여럿 나왔다. 짱구 맥주는 판매 50일 만에 17만 개가 팔렸다.
일본 패션 브랜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국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2021년 9월 1일~2022년 8월 31일 매출이 전년 대비 20.9% 오른 7,043억 원을, 영업 이익은 116.8% 오른 1,148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부터 줄줄이 문을 닫았던 유니클로는 올 초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새 매장을 내고 부산 동래구 매장을 확장 이전하며 영업에 다시 힘을 주고 있다.
일본차 구입도 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한국토요타의 1~5월 누적 판매량은 총 3,01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4.6% 뛰었다. 토요타는 올해 한국에 8종을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최근 플래그십 모델 '크라운'을 선보였다.
이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이념에 휘둘리지 않으려 하고 실용적 소비를 하는 경향이 짙다"며 "여기에 최근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불매 운동의 강도가 낮아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