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우울증을 앓다가 택한 죽음은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숨진 A씨의 유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10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던 A씨는 2019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한 해 전부터 A씨의 증세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수준으로 심해졌고, 2019년 5월에는 일하다 허리를 다쳤으나 산업재해 보상도 받지 못하는 등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사망 당일 A씨는 지인들과 과음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은 A씨가 2012년 계약한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피보험자가 고의로 사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보험 약관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약관상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으나, 보험사는 "A씨가 사망 당시 정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1심은 유족에게 보험금을 줘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A씨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으로 극단 선택을 했다는 보험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망인이 사망 직전 유족들과 통화하며 ‘미안하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고, 극단적 선택 방식 등에 비춰볼 때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장기간 앓아온 우울증 병력과 사망 무렵 악화된 신체적·경제적 문제 등을 따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망인이 극단 선택 9년 전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오다 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문제로 망인을 둘러싼 배경이 지극히 나빠졌고, 특히 사망 직전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