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급감’ 위기의 미국 경찰… 채용기준 완화하는 '위험수'까지

입력
2023.05.30 05:30
17면
2020년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기류 변화 
"인력 60% 부족"… 범죄기록 등 문턱 낮아져 
"경찰은 나쁜 사람" SNS 부정 여론도 '영향'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범죄자를 소탕하는 정의의 캐릭터로 소비되던 미국 경찰이 '인력난'에 허우적대고 있다. 2020년 경찰의 과잉진압이 빚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현장 권한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반(反)경찰 정서까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다. 미 당국은 급기야 신규 경찰관의 채용기준 완화라는 '위험수'까지 던지고 있다.

"지원만 해 주길"… 교육·범죄기록, 체력검증 점수도 하향평가

2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주(州)에서 경찰의 신규 채용자 수가 퇴직 및 이직자 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난으로 신음하는 대표적인 지역은 일리노이주다. 지난해 일리노이주 경찰의 자체 조사 결과, 관할 내 경찰서 239곳 중 60%가 인력 부족을 호소했고, 2020~2021년 보충 인력도 절반은 타 기관에서 전출 온 '경력직'이었다.

다른 지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시는 현재 최소 500명의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 수도 워싱턴의 경찰 역시 50년 전보다도 인원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은 결국 신입 경찰 채용 문턱을 낮추는 '극약 처방'에 나섰다. 일리노이주 경찰은 WP에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채용자의) 교육 및 범죄 기록에 대한 (합격) 기준을 낮추고 있다"고 인정했다. 테네시주 멤피스시도 지난 3월 신규 경찰 채용자의 체력검증 점수를 하향조정한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소소한 전과와 부족한 체력 정도는 눈감아 줄 테니 일단 지원이라도 해달라는 취지다.

미 법무부도 '당근'을 꺼내 들었다. 법무부는 지난달 연방정부 경찰력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를 소집, 경찰직 희망자의 지역별 지원 가능 범위를 확대하고 고용 보너스와 다년 계약을 제공하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추가 예산을 편성해 '경찰직 지원 독려' 홍보 영상도 제작키로 했다.

약화된 경찰 지위… 현직들, 보수 지역으로 '이동 중'

미국 경찰의 위상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전후로 확 달라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로 미 정부는 이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의 현장 조치 권한을 축소하고 책임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찰 개혁' 조치를 취했다. 이에 샌프란시스코의 '베테랑' 경찰 600명은 퇴직하거나 유사 직역으로 이직했다. 총기 사고 등 강력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행정'에 대한 반발이었다.

현직 경찰관들은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잇따라 전출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주정부가 현장 권한을 좀 더 보장해 준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의 무력 사용 책임 조치를 강화한 법안(SAFE-T)이 시행된 2021년 이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은 인근 인디애나주로 이동했다. 제이슨 존슨 전 볼티모어 경찰청 부국장은 "전국의 경찰관들로부터 '보수 지역으로 보내 달라'는 동일한 불만을 들었다"며 "진보 지역 검사들이 경찰의 법 집행 조치를 너무 면밀히 조사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반경찰 정서 확대 재생산'도 지원율 감소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SNS의 영향력이 큰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사회에선 경찰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거나 지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필라델피아 경찰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에일린 맥모니글은 "SNS에 경찰이 되겠다는 글을 올리면 즉시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는 반응이 나온다"며 "SNS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크면 (젊은 층은) 아무도 경찰관이 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