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까지 25년 인연... 김지운 "송강호는 감독 같은 배우"

입력
2023.05.28 19:00
12면
'거미집'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 열기 이끌어
김지운 감독 "송강호는 현장에서 넓게 봐"
송강호 "연출 제작 않고 오직 연기만 전념"

박수와 환호가 10분 넘게 쏟아졌다. 의례를 넘어선 진심 어린 반응이었다. 지난 25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대극장은 열광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거미집'이 빚어낸 장면이었다. '거미집'의 두 주역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를 26일 오후 칸영화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났다. 전날 열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얼굴엔 가벼운 흥분이 어려 있었다.

'거미집'은 197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한다. 막 영화 촬영을 마친 감독 김기열(송강호)이 결론 부분을 다시 찍으면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기열이 검열의 칼을 피해야 하고, 재촬영에 대한 배우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이 여러 차례 웃음을 빚어낸다. 영화에 대한 영화로, 영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김 감독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요와 영화, 드라마 등을 받아들였던 197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며 "유신정권이 영화를 통제했던 당시와 자본이 지배하는 지금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본 논리에 의해) 모험적인 영화 기획이 줄어든 지금 상황이 또 다른 검열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영화란 무엇이고, 영화는 저에게 어떤 의미이고, 무엇이 저를 영화에 매혹되게 했는지 생각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송강호는 "'거미집'이 1970년대 영화 현장과 감독들 전체에 대한 '오마주(존경, 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감독과 배우, 제작자의 욕망이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일이 담겼다"고 거들었다.

'거미집'은 신생 영화사 앤솔로지스튜디오 창립 작품이다. 앤솔로지스튜디오는 김 감독과 송강호, 최재원 대표가 공동 설립했다. 김 감독은 "(송강호가) 제작자 역할을 하진 않았으나 현장에 있으면 늘 제작자 또는 감독이 또 한 명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다른 배우들은 자기 것만 생각하는데, 송강호는 전체를 본다"는 의미에서다. 김 감독은 "정말 좋은 배우가 관록과 연륜이 생기니 제작자처럼 듬직한 믿음을 주면서 재미있게 작업을 하게 됐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송강호는 제작자도, 감독도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는 지난해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로 칸영화제 남자배우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했을 때도 연출은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다른 쪽에 도전하기보다 꾸준히 배우 일을 하는 게 제게 맞다"며 "특별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고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칸영화제 남자배우상 수상에 대해 "배우 생활에 어마어마한 힘을 실어 준 영광"이라고 과분해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진작 받았어야 할 배우라 '얘네 참 늦네'라는 생각을 했다"며 "수상과는 별개로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라고 추켜세웠다.

'조용한 가족'(1998)으로 첫 조우한 지 벌써 25년. 두 사람은 '반칙왕'(2000)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등 5편을 협업하며 한국 영화사 일부를 써 왔다. 송강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 영화 등에도 출연하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송강호는 자신의 매력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꼽았다. "이웃사람 같고 친구 같아서 저를 선택할 때 부담이 덜한 듯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송강호는 언제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면서 "자기만의 고유성이 있음에도 마술처럼 어떤 역할이든 거북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한편 27일 오후 폐막한 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의 프랑스 여성 감독 쥐스틴 트리에 품에 안겼다.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언, '티탄'(2021)의 쥘리아 뒤쿠르노에 이은 세 번째 여성 감독의 수상이다.

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