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여행 동행자

입력
2023.05.30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떠난 장거리 여행에는 특별한 친구들이 동행했다. 새 가족을 찾아 떠나는 션과 샐리. 견주에게 버려져 지자체 보호소에서 지내다 안락사 위기를 피해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보호소로 옮겨진 개들이다. 대형견(잉글리시 세터)이라서 혹은 여덟 살이 넘었다는 많은 나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가족을 찾기 어렵다고 보호소 관계자는 말했다. 기다림 끝에 미국의 동물구조단체를 통해 입양처를 구한 그들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해외이동봉사는 지난해 방송 프로그램인 '캐나다 체크인'으로 널리 알려진 적이 있다. 유기견 임시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가수 이효리가 캐나다로 입양된 유기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새롭게 입양처가 구해진 개들을 데려가는 모습이 방송되면서다. 봉사자는 항공사에 입양견을 자신의 동반 동물로 등록해 함께 이동만 하면 된다. 동물이 단독으로 보내지는 경우보다 운송 비용이 10분의 1까지 저렴하기 때문에 구조단체들은 봉사자를 수시 모집하고 있다. 유기·구조견이 꾸준히 해외로 입양 가고 있다는 의미다.

개들은 미국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둘은 켄넬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 낯선 환경에 긴장했는지 물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조심스레 밖으로 한 발 내딛는 그 둘에게 공항 이용객들의 시선이 쏠렸다. 가까이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노년의 부부는 주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답을 하고 돌아섰을 때 공연히 낯뜨거웠다.

어디서부터 오는 부끄러움일까. 개를 버린 장본인도 아니고 오히려 선의로 그들과 동행한 것뿐인데 말이다. 돌아보면 입양견 사연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킨 기분이 든 탓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 인권 수준의 척도다. 어린이 여성 장애인 노인 성적소수자 그리고 동물에게까지 포용해야 할 사회적 약자의 범위를 넓혀 가는 인권 진보의 여정 속에서, 우리 사회의 위치를 션과 샐리가 정확히 짚어준다.

물론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캐나다 체크인' 외에도 동물 훈련사인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 등 전문가들이 활약하는 관련 콘텐츠의 높은 인기도 그 방증이다. 하지만 반려동물 유기, 야생동물 학대, 동물실험 등 현실은 어둡다.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야 할 법제 개선 속도도 더디다.

동물을 사물로 규정한 '민법' 개정 상황이 대표적이다. 2021년 정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제98조의 2)라는 조문을 신설한 개정안을 발의, 여야가 올해 5월 통과를 합의했다. 그러나 정쟁에 밀려 5월이 고작 이틀 남은 현재(29일)까지 법제사법위원회 논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민법 개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만 동물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건 동물보호법 등 다른 법 개정과 인식 개선에 바탕이 되는 일이기에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방송 출연이 화제다. 은퇴 안내견을 입양한 사연을 소개하며 반려동물을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반가운 일이나, 홍보 방송보다는 대통령이기에 할 수 있는 법·정책 개선에 힘을 보태는 방식으로 동물권 보호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더욱 반가울 것 같다. 션과 샐리 같은 친구들이 버려지는 일을 애초에 방지할 수 있도록.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