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이 철저해 매년 10월 수상자 발표 시즌이면 한바탕 결과 맞히기 도박판이 벌어지는 노벨문학상이지만 2012년은 예외였다. 발표 당일 오전부터 소설가 모옌(莫言·67)이 상을 탈 거란 정확한 관측이 돌았다. 중국 관영 CCTV의 '천기누설' 탓이었다. 노벨위원회에서 시상식 취재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사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떡하니 게시한 것. 중국 국적 작가의 첫 노벨문학상이란 경사는 초장부터 김이 샌 채로 치러졌다.
□ 이번엔 모옌 자신이 누설 당사자가 됐다. 이달 16일 상하이에서 후배 작가 위화(余華·63)의 중국 내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축사가 안 써져서 챗GPT를 이용했다"고 털어놔 청중을 놀라게 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 위화와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홍콩 매체는 "모옌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글을 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첫 노벨상 수상 작가"라고 논평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모옌은 그 자리에서 "내 소설은 모두 직접 쓴 것"이라고 강조했단다.
□ 자기 못지않게 거물 작가인 위화를 띄워주려 모옌이 학생에게 건넨 키워드 중 하나는 '발치'였다. 위화는 사회 초년병 시절 병원에서 이를 뽑는 일을 했다. 항간에 치과의사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냥 발치사였다. 어떤 에세이에서 그는 재활용하느라 바늘이 구부러진 주사기 때문에 어린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바늘을 평평하게 갈기 시작했고 그것이 '타인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계기였다고 썼다. 실제 만나보면 유쾌하고 겸손한 위화는 작가가 된 계기를 묻자 "그냥 병원일이 재미없었다"고 했다.
□ 중국에선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챗GPT 서비스 대상국이 아니라서 모옌이나 학생이 무단 사용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챗GPT에 접속하려 가상사설망(VPN)을 썼다면 더 큰 문제다. VPN 사용은 정부 금지 행위로 벌금이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노작가의 신세계 경험에 호된 대가가 따르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