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협상이 곧 끝나면 (원청이 주는) 직접 노무비를 그대로 다 받기로 했어요. 그러면 월급이 세전 39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세금 떼면 340만 원 정도 받을 것 같고요. 식대도 하루 7,000원씩 14만 원을 별도로 받기로 했어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허용민(52·가명)씨는 다음 달부터 입사 3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몫의 임금을 다 받게 될 예정이다. 지난해 세전 308만 원이던 월급이 80만 원 넘게 인상되고 식대를 따로 받기까지, 그는 꼬박 1년을 싸웠다. 용역업체의 중간착취 없이 원청이 준 노동자 몫(직접 노무비)을 온전히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떼어먹는 것이 당연한 곳에서는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국회에는 2년 전부터 용역업체 노동자의 임금 중간착취를 막는 법안(중간착취 방지법)이 발의돼 있었다. 발의 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던 이 법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올 상반기 중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원청, 용역업체를 상대로 싸우지 않아도 용역업체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기 몫을 전부 받는 길이 열릴까.
허씨는 3년 전 이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밤 10시~다음 날 오전 6시까지 7톤 차량을 운전해 다니며 울산 중구 지역의 아파트, 빌라, 식당에서 버린 음식물 쓰레기통(60·120리터) 70, 80개를 홀로 비우는 일을 한다. 울산 중구청이 그가 속한 용역업체에 맡긴 일이다.
그런데 업체는 지난해 초부터 주 5일 근무를 지키지 않고 토요일마다 3, 4시간씩 무급으로 일을 시켰다. 몇 달간 참아온 노동자들은 지난해 5월 노조를 만들었고, 몰랐던 일들을 하나둘 알게 됐다. “돈은 주는 대로 받았다”는 허씨가 임금을 떼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때다.
원청인 울산 중구청이 2021년 용역업체에 준 노무비 기본급은 355만 원(주 6일 근무, 생활폐기물 운전노동자)이었지만, 허씨가 받은 세전 월급은 278만5,400원(당시 주 6일 근무함)으로 70만 원 넘게 차이가 났다. 또 중구청은 식대(1일 7,000원)를 용역업체에 줬지만 허씨는 받아본 적 없었다. 그는 "용역계약서에는 노동자에게 직접노무비를 100% 이상 지급하라고 되어 있지만, 1년 차에는 70%, 2년 차 80%, 3년 차 85% 정도만 받고 일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노조가 정보공개 청구, 울산시 구의원이 제공해준 임금 대장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업체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또 다른 용역업체에 유령직원을 등재해 울산 동구청으로부터 받은 노무비를 3년간 7억 원 정도 빼돌린 의혹까지 있었다. 노조는 이 대표를 배임, 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지금은 대표가 바뀐 상태다. 허씨는 “(지방)정부에서 하는 일인데도 중간에서 착복하는 거 보고 놀랐다”며 “구청에서 지급하는 돈 자체가 시민들 세금인데 민간기업(에서 일어나는 비리)이랑 다른 게 없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측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파면 팔수록 ‘구청이 관리를 제대로 안 했구나’ 싶더라고요. 원인은 구청이 제공했어요.” 허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만든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지자체가 용역업체의 임금지급 명세서 등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허씨는 “구청에서 한 달치 계약금을 업체에 주고는 회사에서 (월급을 허위로) 짜맞추기 해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됐는지 확인을 안 했다”며 “구청이 ‘너희(업체)가 알아서 다 해라’ 하니까 업체 사장들은 손대기 좋은 인건비를 빼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이 용역업체가 제출하는 자료만 믿고 임금이 실제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지급됐는지는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공무원들은 용역업체하고만 이야기를 한다. 노동자들은 아예 공무원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무원들이 1년에 2번 현장에 와서 임금 명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한 용역업체에는 가지도 않고 전년도 사진을 그대로 넣고는 방문했다고 허위 서류를 만든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공무원들만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의원과 노조의 조사로 폐기물 업체의 횡령과 비리가 대거 드러났음에도 울산 중구청과 동구청은 이 업체들과 계속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허씨는 “누가 봐도 뻔한데 구청은 '확정 판결이 나오면 그에 따라 조치를 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원청이 민간업체였더라도 하청에 이런 문제가 터지면 계약을 파기하거나 시정 조치를 했을 텐데, 구청은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나 다른 방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재판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허씨는 지난 1년간 동료들과 업체 비리를 파헤치고 피켓 시위, 기자회견을 하며 업체와 울산 중구청에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는 “다행히 우리 회사는 바로잡혀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아직도 이럴 것”이라고 우려했다. 울산 지역은 그나마 노조 결성률이 높지만 전체 용역 근로자의 노조 가입률은 1.7%(2019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불과하다. 허씨처럼 노조를 통해 중간착취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법제화로 중간착취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법’은 용역업체가 노동자 임금에 손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 발주 건설 공사 등에 이미 도입된 ‘임금 직접 지급제’처럼 원청이 임금 전용계좌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 처음 들었다는 허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법이 그렇게 되면 그게 제일 확실하지요. 그러면 노동자들이 불이익당하는 일은 안 생길 것 같아요. 법안이 통과되면 몰라서 지금까지 당하고 있던 것들이 아예 없어지니까요. 저는 찬성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자필로 적은 메시지를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그는 입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간착취 방지법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라는 내용의 법인 것 같습니다. 조속히 입법이 되어 수많은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가를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희망하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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