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이 만들고 노래한 연가 '우리는' '사랑이야'는 걸작 발라드다. 사랑의 일상적 에피소드를 다룬 요즘 발라드와 다르다.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도 모두 알 수 있는('우리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나와 그대가 마주한 순간에서 삶의 전 존재를 읽어내는 사랑이다.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촛불 하나" 밝히고 "시냇물 하나 흘려('사랑이야')" 놓은 사랑은 어떤 것인가? 간절한 소망의 길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는 종교적 사랑이다.
두 노래의 백미는 "천둥 치는 운명처럼 우린 만났다('우리는')"와 "단 한 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사랑이야')"이다. 찰나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읽어낸다. 이 미학적 서사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이 노래들을 제대로 부를 수 있다.
최근 2주 연속으로 방송한 KBS TV '불후의 명곡' 송창식 편에서 유리상자와 환희가 각각 이 노래들에 도전했다. 노래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웠지만 평범한 사랑 노래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 원곡이 가진 저 큰 정서적 진폭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 송창식이 보여줬던 섬세한 인문적 무늬는 사라지고 평면적 애절함만 남았다.
'나의 기타 이야기'는 송창식이 밝힌 대로 소녀를 기타로 의인화한 동화 같은 노래다. "아름답고 철모르던 지난날의 슬픈 이야기"라는 가사처럼 아름다움과 슬픔이 나란히 있다. 동화지만 새드 엔딩이다. 노래 속 소년과 소녀는 훼손된 이 세계에 던져지기 전의 존재다. 그 둘의 공간엔 의심과 불안의 그늘이 없이 동경과 설렘만 있다. 하지만 소녀는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버리고, 거기에 닿을 수 없게 된 소년은 '영원한 결핍'에 갇힌다. 사랑은 결국 결핍으로 완성되고 늘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의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박창근이 부른 노래에선 이 슬프고 아득한 심미적 거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훌륭한 가창력은 흥겨움과 팬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노래 '푸르른 날'의 그리움은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의 시정(詩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다음의 그리움이어야 한다. 죽음과 삶이 원환적으로 얽힌 하나의 사건이라는 시적 맥락 위에 그리움이 서 있다. 그러므로 그리운 누군가를 호명할 때, 이 생멸(生滅)의 극적 감정이 깃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가사의 진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소멸의 낭만성이 거기에 있다. 박정현의 가창력은 탁월했지만 그 낭만성에 온전히 이르기에 부족해 보였다. 서정주의 시를 끌어온 이 노래의 완벽한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송창식은 국민 가수이자 지식인 가수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이 두 지위를 함께 누린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 그가 노래할 땐 깊이를 알 수 없는 정서적 동공(洞空)이 보인다. 송창식 노래의 울림은 단순히 목청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 인문적 힘으로 파 내려간 그 동공에서 나오는 것이다. 송창식은 진지한 문학성과 지적 고고함, 키치적 속기(俗氣)를 마음대로 취사(取捨)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번 '불후의 명곡' 송창식 편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싱어송라이터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많은 후배 가수가 최선을 다해 송창식의 세계를 탐사했으나 대부분 그의 성채 근처에서 기웃거리다 돌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