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감독에게는 ‘벚꽃연금’이 불가능한가

입력
2023.05.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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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영화 전문 케이블채널에서 제 영화가 나올 때 친구들이 휴대폰 문자를 종종 보낸다”고 했다. “저작권료가 입금될 테니 밥 한번 사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장편영화 2편을 연출한 그는 단 한 번도 저작권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가수 장범준은 벚꽃 필 무렵이면 저작권료 수입이 급증한다. 2012년 발표한 노래 ‘벚꽃엔딩’이 매년 봄마다 방송 전파를 타고 음원사이트에서 인기를 얻어서다. 저작권료 수익을 두고 ‘벚꽃연금’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해마다 화제를 모은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1982년에 나왔다)은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 한 줄 덕에 매년 10월 31일마다 대중에게 소환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국내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국내 저작권법은 감독과 작가의 저작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투자사, 제작사와 계약할 때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른 나라 감독과 작가도 마찬가지일까. 한국영화감독조합(DGK)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40개가량 국가가 저작권법에 따라 국내외 감독과 작가의 저작권을 인정한다. 영화가 TV에서 방영되거나 사람들이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를 볼 때마다 저작권료가 차곡차곡 쌓여 감독과 작가에게 전해진다.

저작권료 지급은 해외 감독도 포함된다. 지난 2월 스페인음악영상저작권협회(DAMA)와 아르헨티나감독협회(DAC)는 총 2억7,000만 원을 DGK에 송금했다. 영화감독과 방송 PD 약 500명에게 줄 1년치 저작권료였다. 창작자에 따라 적게는 수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의 황동혁 감독이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DGK가 스페인ㆍ아르헨티나 단체와 상호대표계약으로 저작권료를 찾아왔으나 송금은 일시적인 것이다. 국내 저작권법이 국내외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장해주지 않아서다. 한국에서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감독에게 저작권료를 주지 않으니 두 나라 역시 한국 감독에게 돈을 보낼 이유가 없다. 상호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국내 저작권법의 맹점을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영상물 저작자들의 저작권 보장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각각 대표발의)이 발의되었으나 아직도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DGK는 저작권법이 개정되면 40개국가량으로부터 연간 저작권료 약 450억 원을 받는 대신 70억 원을 송금하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우석 강제규 봉준호 김용화 최동훈 등 한국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감독들이 있다. 하지만 돈과 명예를 거머쥔 스타 감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DGK에 소속된 감독만 474명(정회원 기준)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영화를 연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저작권료가 소액이라도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된다. 전주영화제에서 만난 또 다른 감독은 “국내외에서 누군가 제 영화를 보았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자가 우대받아야 콘텐츠 산업이 발전한다. 감독과 작가라고 ‘벚꽃연금’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