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 진짜 안 받네요.”
4일 오전 10시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관광지 입구. 운동복과 가벼운 옷차림의 등산객들이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매표소를 지나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전날만 해도 매표소에 붙어 있던 ‘성인 2,000원, 청소년 600원’이라고 쓰인 요금표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불교문화유산, 국민에게 가까이’라는 글귀와 함께 전면 무료개방을 알리는 안내문이 등산객들을 맞았다.
소요산에서는 산 중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 말사인 자재암 측이 보유 문화재(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등)와 경내 관람을 명목으로 30년 넘게 관람료를 징수해 왔다. 하지만 민간단체가 국가지정문화재로 관람료를 감면하는 경우 비용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되면서 조계종 산하 64개 사찰 등 65개 전국 사찰 관람료가 폐지됐다.
등산객들은 개정안에 대부분 반색했다. 소요산 앞에서 만난 송모(55)씨는 “들르지도 않는 산속 사찰에 관람료를 지불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며 “관람료 부담을 덜게 돼 좋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내보이면 무료입장이 가능했던 지역주민과 65세 이상 노인들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동두천 주민 김모(45)씨 부부는 “등산객들이 관람료 징수 문제로 사찰 측과 다투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면서 “외부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소요산 초입 음식거리 상인들도 “관람료가 사라지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방문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흥사가 위치한 설악산 등 유명 사찰을 낀 산을 찾은 등산객들도 관람료 폐지를 반겼다. 이날 설악산을 찾은 한 등산객은 “매표소를 피해 샛길로 돌고 돌아 산행하는 등산객도 있을 정도로 관람료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게 사실”이라며 “관람료 면제는 긍정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지자체들은 관람료 폐지가 관광 활성화 효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사찰 관람료를 두고 등산객들이 자주 민원을 제기해 힘들었는데,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며 “침체된 소요산 관광지가 활력을 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찰 관람료 징수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후 61년 만에 폐지됐다. 1970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와 통합 징수되다가, 2007년 1월 국립공원이 입장료를 없앤 뒤에도 “문화재 보호ㆍ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며 사찰 관람료만큼은 유지해 숱한 반발을 불렀다.
실제 2008년 동두천 주민 15명은 “사찰 문화재 관람료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자재암을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도 “등산객의 관람 의사와 상관없는 일률적 관람료 징수는 법률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당시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탓에 판결 효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역시 소송으로 번진 전남 천은사 통행세 갈등은 지난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보문사, 고란사, 백련사 등 시ㆍ도지정문화재를 보유한 5개 사찰은 감면비용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계속 관람료를 징수한다.
물론 우려도 있다. 특히 사찰 측은 문화재 및 자연 훼손 가능성을 걱정한다. 전남 구례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사찰을 무료 개방할 경우 대량 쓰레기 발생과 문화재 손상 등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면서 “누구나 불교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람객들의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감면비용을 국가가 떠맡는 문제를 놓고도 여진이 지속될 전망이다. 사찰 관람료 폐지로 올해만 세금 419억 원이 투입된다. 소요산 입구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국민 혈세로 사찰 관람료를 대신 지불하는 것 같아 찜찜하다. 진짜 무료입장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