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은 적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동남사우나'. 목욕을 마친 뽀얀 얼굴의 여성 4명이 입구를 나서며 연신 "개운하다"는 말을 되뇄다. 카운터에 앉아 수건을 정리하던 서현정(62) 대표는 "자주 오시라"며 이들을 배웅했다.
뒤이어 목욕탕을 찾은 장한호(83)씨도 돈이 아닌 초록색 목욕 이용권을 내밀었다. 서 대표는 반가운 목소리로 "오랜만에 오셨다"며 옷장 키를 건넸다. 이날 목욕탕을 찾은 이들은 영등포쪽방촌 주민들로 '서울시 동행목욕탕' 이용자들이다. 서 대표는 "여성 손님 2명은 거동이 불편해 서로 부축하며 목욕탕을 찾을 정도로 단골이 됐다"며 "씻을 곳이 마땅찮은 쪽방 주민들이 이곳에서만큼은 편히 쉬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3월부터 동행목욕탕 사업을 시작했다. 에너지 요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목욕탕 활성화와 쪽방 주민들 건강한 생활이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는 취지다. 쪽방 주민에게 월 2회 목욕탕 이용권을 제공하고, 목욕탕은 매달 이용 횟수와 금액(8,000~1만 원)만큼 정산 받는다. 이용 실적과 주민 평가가 좋은 목욕탕에는 50만~100만 원의 특별 인센티브도 준다. 한미약품이 3년간 15억 원을 지원했다.
시행에 앞서 서울시는 사업 참여업체를 찾기 위해 주요 쪽방촌 반경 1㎞ 내 동네 목욕탕을 전수조사했다. 종로구 돈의동 2곳과 창신동 1곳, 남대문·서울역 3곳, 영등포구 1곳 등 7곳을 선정했다. 두 달 동안 쪽방촌 주민들의 동행목욕탕 이용 횟수는 3,128회에 달해 긍정적이다. 장씨는 "집 근처에 무료로 씻을 곳이 있지만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며 "목욕탕에 자주 가기 어려운 쪽방촌 주민들에게 동행목욕탕은 가뭄의 단비"라고 말했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장도 "쪽방 환경을 감안하면 여름철 이용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행목욕탕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지만 처음엔 사업에 참여할 목욕탕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음주 목욕이나 허름한 행색, 악취와 안전문제를 업주들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동행목욕탕 참여 업주는 "기존 손님들도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운영 기간 중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며 "평소 목욕탕에 오던 분이 동행목욕탕 이용권을 들고 찾아와 놀란 적도 있었다. 쪽방 주민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 여파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목욕탕 업주들이 '사회적 약자에 도움을 준다'는 사업 취지에 공감하면서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신동남사우나만 해도 지난달 200여 명의 쪽방 주민이 이용해 16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서 대표는 "올해 초부터 가스비와 전기세, 물값만 두세 배 늘었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정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동행목욕탕이 쪽방 주민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1인당 월 2회로 제한된 이용 횟수를 늘려달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서 대표는 "한 달에 두 번 이용은 쪽방 주민들도 아쉬워한다"며 "월 4회 정도라면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씨도 "쪽방에는 탕이 없어 월 2회라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자주 몸을 담글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쪽방 주민들은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어 '쪽방상담소' 시설을 찾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름이면 샤워시설 부족으로 불편한 게 많다. 지난해 서울시 쪽방주민 실태조사 결과 쪽방건물 중 27.6%만 샤워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신옥 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은 "목욕탕과 주민 모두 반응이 좋은 만큼 올해 운영 결과를 분석해 향후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