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최대 외교이벤트인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30일 귀국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워싱턴 선언'을 통해 대북 확장억제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반면 미국의 차별적 조치에 애를 먹는 반도체·자동차 분야에서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아 '글로벌 가치동맹'으로 격상됐지만 중국·러시아와 갈등이 고조되면서 적잖은 부담으로 남았다. 선물 꾸러미 포장만 화려할 뿐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한미 정상회담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봤다.
워싱턴 선언의 산물인 '핵협의그룹(NCG)'이 최우선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미국 핵자산 관련 정보 공유를 넘어 공동기획·실행까지 약속받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정권의 종말"이라고 경고하며 거들었다. 이에 더해 은밀하게 움직이는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반도에 정례적으로 전개하겠다고 공개할 만큼 확장억제 강화에 공을 들였다.
이 같은 고강도 대응에 실제 북한이 움츠러들 것인지가 관건이다. 핵·미사일 도발에 맞서 핵무장을 요구할 정도로 국내 여론은 격앙돼 있다. 성패는 차관보급 협의체인 NCG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할지에 달렸다. 상설 협의체라는 대통령실 설명과 달리 NCG는 분기 1회 열린다.
한미 양쪽에서 벌써부터 해석이 다른 점은 불안요인이다. 이번 합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식의 '핵공유'인지를 놓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실상 핵공유로 느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한반도에 핵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시혜에 기대는 과거 방식을 탈피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여전한 대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앞으로 NCG에서 한국 요청 시 미군의 전략자산이 들어오는 문제 등을 두고 세부논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NCG는 만드는 것보다 운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분야의 핵심 현안은 미국의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었다. 우리 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손에 잡히는 성과를 얻어내야 했다. 특히 반도체법에서 △중국 내 반도체공장 확장 제한 △초과이익 환수 △경영상 기밀 제공 등 독소조항과 관련 '통 큰' 양보를 이끌어내길 바랐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속적·긴밀한 협의"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연원호 대외경제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국내 기대치가 높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국 정상이 '한국 기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감대를 이뤄 물밑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세일즈 외교에서는 실적이 화려했다. 미국 8개 기업이 향후 한국에 59억 달러(약 7조8,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양국 기관·기업은 5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물론 넷플릭스의 3조4,000억 투자를 놓고는 "원래 해오던 수준"이라며 부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여느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MOU는 '현금'이 아닌 '어음'인 만큼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미국과는 훨씬 가까워졌다. 반면 북한을 뒤에서 받치는 중국, 러시아와는 사이가 더 불편해졌다. 향후 비핵화 논의나 북한 도발에 맞선 국제사회 대응에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방미 직전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거론한 것에 중국은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회담 후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라"고 톤을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반발수위가 높았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재차 밝힌 만큼 러시아와도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대사는 “미국과 중러 간 대립이 깊어진 국제정세 속에서 대미 공조 강화를 통해 우리 입지를 높이려는 건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대미 방향성만 명확히 보여줬을 뿐, 한반도에서 제외할 수 없는 중러와의 관계 전략은 나온 게 없다”며 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