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스트라이크야?”
고교야구에 처음 등장했다는 로봇 심판의 정체가 궁금했다. 포수 뒤에 사람 형체의 진짜 로봇이 서 있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지만 어떻게 구현되는지, 과연 판정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기대를 품고 중계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달 초 목동구장에서 열린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로봇 심판, 자동 볼ㆍ스트라이크 판정시스템을 도입했다. 고정된 위치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투수가 던진 공의 위치ㆍ속도ㆍ각도 등을 측정한 뒤 구심이 착용한 이어폰을 통해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 컸다. 덕수고와 강릉고의 결승전에서 로봇 심판은 원바운드성 볼을 수 차례 스트라이크로 ‘오독’하면서 명승부에 찬물을 끼얹은 훼방꾼이 되고 말았다. 야구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볼이라고 생각할 만한 코스였는데 인공지능(AI) 시스템은 스트라이크 존을 거쳤다고 판독했다. 관중석에선 야유가 나왔고, 감독이 뛰쳐나가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저 “스트라이크”를 외친 전달자가 된 심판은 유구무언이었다.
로봇 심판을 들인 명분은 공정이다.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과 불신, 심판 매수로 이어진 아마야구의 추잡한 병폐를 도려내고자 함이다. 더 이상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정확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팬들의 니즈에도 부합한다. 일자리를 뺏긴 심판들도 차라리 판정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 로봇 심판의 도입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지금 ‘인간적인 요소’를 추구한 스포츠도 더 이상 성역은 아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입신의 경지에 이른 바둑 기사 이세돌과 대결(2016년 3월)을 펼쳤던 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AI의 위대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기계에 패배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덕분에 진지한 성찰과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종목으로 확대된 비디오 판독 덕분에 오심도 사라지는 추세다.
다만 간과한 게 있다. 스포츠는 큰 비중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경기 당일 선수 컨디션이나 경기장 상태, 날씨 등 다양한 변수가 발생한다. 특히 야구는 40년 된 KBO리그, 15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끊임없이 신기한 장면이 나오는 무궁무진한 ‘수(手)’의 스포츠다. 인간 심판과 해석이 다른 스트라이크 존 문제는 차치하고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원천봉쇄될 우려가 크다.
로봇 심판 실험을 선도하고도 정작 정식 도입은 유보하고 있는 미국프로야구가 이 점을 짚었다. 미국의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 보도에 따르면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로봇 심판이 인간을 대신하면 포수의 프레이밍(볼을 스트라이크로 보이게 만드는 미트질)이 무력화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뛰어난 선수의 개인기가 쓸모없어진다면 야구 보는 매력이 크게 떨어질 게 뻔하다.
몇 년 전 AI 심판 도입을 발표한 체조에서 선수들이 풀어내는 동작의 미(美)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순기능에 공감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직접 확인한 바 씁쓸했던 로봇 심판의 데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