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창작자의 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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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4 04:40
25면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입니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울 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고(故) 이우영 작가가 재판부에 마지막으로 제출한 진술서의 내용이다. 무엇이 작가의 마음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을까.

헌법 제22조 제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한다.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1957년 저작권법이 제정되었고, 현행법상 권리는 크게 ①저작인격권, ②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으로 구성되고, '저작재산권'은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으로 구성된다. '저작재산권'은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고 이우영 작가를 대리한 변호사에 따르면, 작가는 사업자 측에 저작재산권 일체를 포괄적·무제한적·무기한적으로 양도했고, 사업자는 공동저작권자로 등록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를 이용해 77개의 사업을 하면서 15년간 작가에게 지급한 돈이 1,200만 원에 불과하고, 정산이 불투명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사업자 측은 사업수익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적자가 난 사업도 있었으며, 계약에 따라 정산을 해주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소송이 계속된다면 결론적으로 법원이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종합하여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고 이우영 작가와 사업자 측이 저작권 관련 계약서에 쌍방 서명·날인했다고 해서 그 계약서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결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즉, 작가가 창작한 저작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수익배분 구조에서도 소외되는 계약이 그 작가가 서명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법적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말이 맞다. 사적자치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법 관계에서 법원은 '불공정계약이므로 무효이다'라는 주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분문서인 계약서까지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민법 103조, 104조가 '불공정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해두고 있긴 하지만 적용요건이 엄격하고, 사업자 측은 "작가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작가는 실질적으로도 자유로운 의사였을까? 물론 이 문제를 모든 법 분야에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적어도 창작자와 사업자의 관계에서는 재고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창작자는 외관상 '저작권'을 가진 주체이지만, 교섭 상대방인 사업자는 유통수단을 가지고 있는 '거대권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저작물의 속성상 창작시점에서는 정확한 가치평가가 어렵고, 예상치 못한 시점에 대중의 선택을 받아 가치가 폭등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투자 대비 손실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업자 입장에서는 일정금액만 지급하고 향후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매절계약을 체결하거나, 정당한 수익배분 구조를 정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고, 무명작가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쌍방 교섭력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관계에서는 사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크다. 고 이우영 작가는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사업자 측이 2019년 제기한 2억8,0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2020년 창작 포기를 선언했다.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 고 이우영 작가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작가의 사망 후 국회에서는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개소하여 저작권에 익숙하지 않은 창작자들을 법률적으로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작가가 소송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만화(작가의 사망 후에 공개되었다)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내가 다시 기영이, 기철이를 그릴 수 있을까?"

소제인 법무법인 (유)세한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