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9가구 전세사기 피해... 미추홀구, 어쩌다 먹잇감 됐나

입력
2023.04.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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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빌라왕·청년 빌라왕 주택만 2500채
공시지가 낮은 상업지역에 신축 수요 몰려
금리 인상·부동산 시장 한파에 위험 현실화
정부 대책 무색 경매업자들 득실 "감시 필요"

전세사기 피해가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인천 미추홀구에 유독 피해가 집중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추홀구에선 최근 두 달 새 전세사기 피해 청년 3명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20일 미추홀구가 지난달 6일부터 이날까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 가구는 2,484가구에 이른다. 이 중 1,531가구(61.6%)는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에 넘어갔고, 92가구는 이미 낙찰돼 매각됐다. 전체 피해금액은 2,00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전국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한 이른바 '건축왕' '빌라왕' '청년 빌라왕'의 소유 주택 중 인천에 있는 주택은 3,008채이며, 이 중 대부분(2,523채·83.8%)이 미추홀구에 몰려 있다. 미추홀구 중에서도 전철역과 가까운 숭의동(도원·제물포역)과 도화동(도화역), 주안동(주안역) 등에 피해가 집중됐다.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남모(62)씨가 대표로 있는 건설업체 주소지도 도화동이다.

공인중개사들은 2017년부터 이 일대에선 이상 조짐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곳곳에 신축 빌라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가격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미추홀구는 재개발 예정지가 230곳에 달하는 등 낙후지역이 많아 집값이나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공인중개사 이모(60)씨는 "당시 돈이 된다는 소문에 신축 빌라가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분양가로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전세로 다 풀렸다"며 "전세 매물이 없는 상황에서 전세 대출을 막 퍼주면서 젊은 사람들이 물건을 뺏길까봐 가계약금을 넣고 그랬는데, 그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이제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숭의동 등에는 주택지구가 아닌 상업지역이 많고 공시지가도 낮아 대단지 아파트가 아닌 한두 동짜리 소규모 아파트나 오피스텔, 빌라 등이 밀집하게 됐다. 숭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택지구는 5, 6층까지밖에 못 짓지만 상업지역은 오피스텔을 최대 15, 16층까지 올릴 수 있는 데다 공시지가도 낮아 이윤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며 "2, 3층짜리 오래된 건물이 많은 미추홀구는 원래 매매 위주였는데 건물을 허물고 고층 오피스텔을 올리는 게 돈이 되자 건축업자들이 몰렸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한 건축업자 남씨도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한 뒤 소규모 아파트 등을 지었다. 건축 비용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준공 대출금으로, 대출이자 등 사업 비용은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했다.

역세권 신축 빌라 전세 매물은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게 인기가 많았다. 근저당이 잡혀 있었지만 보증금이 1억 원을 넘지 않은데다 "문제없다"고 안심시킨 일부 중개사들 말에 넘어가 도장을 찍은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추홀구 주택 수요는 더 늘었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위험이 현실화됐다. 대출금과 보증금으로 대출이자,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하는 게 어려워지자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남씨가 소유한 주택들도 지난해 1월부터 대거 경매에 넘어갔다. 하지만 남씨와 결탁한 중개사들이 이 같은 사정을 숨기고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전세사기 매물에 대해 경매 중단과 유예 조치를 내렸지만, 미추홀구에는 이를 비웃듯 경매업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매 관련 단체채팅방에 '물건을 낙찰받아오면 수수료를 지급하겠다'는 광고성 글이 올라오는 등 전세사기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며 "1차와 2차 경매에서 유찰되고 3차 때부터 10여 명 이상의 특정 세력이 투찰하는 패턴이 이어지면 세입자가 낙찰받기 힘들 수 있다. 정부는 경매 낙찰자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