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자 러시아가 곧바로 전면에 나섰다. '전쟁 개입'이라 반발하고 대북 무기 지원으로 위협하면서 노골적으로 한국을 견제했다. 러시아는 그간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며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도 뒷짐만 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에 기다렸다는 듯 대립구도에 가세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로 튀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만약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비살상물자에 국한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것과 차이가 크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26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에 성의를 보인 측면이 크다. 미국 주도 대러시아 포위 전략에 합류하는 셈이다. 1,0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목소리를 낼 명분도 확보했다. 살상무기 지원이 현실화한다면 이른바 ‘K방산’으로 불리는 국산 무기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진출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특히 나토는 한반도 유사시 적극 개입을 약속해 온 든든한 우군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 인터뷰는 △한미동맹 △재건사업 △나토와 밀착이라는 3가지 효과를 노린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이에 러시아는 발끈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 가능성이 거론됐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에는 푸틴 대통령 측근이 앞장서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단순히 유엔 안보리에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어깃장을 놓는 차원을 넘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적극 개입하겠다는 엄포나 마찬가지다.
물론 러시아가 당장 북한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한에 비해 가장 열세인 북한의 전력은 공군력이다. 그렇다고 수호이를 비롯한 최신 5세대 전투기를 북한에 넘겨봐야 운용할 조종사가 마땅치 않다.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북한과 공유하는 건 러시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렵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가혹한 대응도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선다면 북한의 잇단 도발로 가뜩이나 고착화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구도는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한미 확장억제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에 실제 살상무기를 지원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러시아와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교전당사국 일방에 무기 등 전시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국제법상 상대 국가로부터 교전당사국으로 지목될 만한 사안이다.
이 경우 러시아에 사는 교민들과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행동에 부담이 따르는 군사적 대응카드와 달리 러시아가 우리 경제를 볼모로 잡으며 분풀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러시아 교역량이 전년 대비 23% 줄었지만 여전히 211억5,000만 달러에 달해 적지 않은 규모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포탄의 주요 생산국인 한국은 지금까지 서방 국가들의 무기 공급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때문에 러시아를 적대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