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소득 3,500만 원 이하면서 신용평점도 하위 20% 이하인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 원까지 빌려주는 소액생계비 대출. 지난달 27일 출시 이후 첫 주에만 무려 5,499건의 대출신청이 접수됐습니다. 대출금액은 총 35억 1,000만 원. 1인당 평균 64만 원의 돈을 빌린 셈입니다. 누군가는 '64만 원이 없어서 대출을 받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64만 원이 없어 사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정부의 이번 소액생계비대출 출시 목적도 저소득ㆍ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2021년 7월 금융위원회가 24%였던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합니다.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최고 이자율이 연 20%라는 뜻인데요. 그런데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불법 사금융, 즉 사채가 활개를 치게 된 것인데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오늘의 h알파, 대부업과 사채 사이, 법정 최고금리 20%의 함정입니다.
연 66%에서 출발한 최고금리는 2014년 34.9%까지 꾸준히 떨어졌고, 2021년 7월 20%까지 낮아졌습니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의도였죠. 그러나 최고금리 인하 이후 역설적으로 서민들이 돈을 빌리는 일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대부업체의 대출 공급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대부업체의 수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대부업체는 신규 대출을 줄이거나 대출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기준금리까지 연이어 인상되면서 아예 문을 닫는 대부업체도 늘어났습니다. 대부업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업계의 신규 대출은 2022년 1월 3,900억 원 규모에서 2023년 1월 430억 규모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실제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출을 못 받고 배제된 사람이 40만 명, 금액으로는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저신용자들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히 불법 사금융, 즉 사채 시장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업은 최소한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만 사채는 말 그대로 '불법'이기 때문에 연 수천 % 고리 이자를 뜯어내거나 협박, 폭행 등 불법 채권추심도 저지릅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검거건수가 1,177건에 달합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불법 사금융 업체로부터 금전을 빌리면 갚을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신용자들의 불법 사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긴급생계비 대출을 실시했지만, 이 역시도 장래가 밝지만은 않습니다. 대출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이 몰리면서 재원이 조기 고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소액생계비대출 공급 목표액인 1,000억 원은 7월쯤 소진될 것으로 보이고, 추가 지원을 위해 당장 500~1,000억 원가량이 필요하지만, 자금을 확보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고 이자율을 다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준 금리가 올랐으니 이를 반영해 이자율을 높이고 합법적인 대출 창구를 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상안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66%에서 기껏 20%로 낮췄는데, 다시 올리는 것은 시대를 역행한다는 입장이죠.
돈이 없으면 빌리면 된다고, 누군가는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마저도 어려워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금융소외층이 있습니다. 법정 최고금리 20%라는 금융 정책이 복지 정책과 무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h알파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https://bit.ly/3RrDmye)
연출 김광영/ 구성 제선영/ 진행·취재 한소범/ 촬영 안재용·최희정·권준오/ 영상편집 김광영/ 인턴PD 김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