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외교안보 라인을 감청한 정황이 담긴 기밀문서가 유출됐다.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NYT)가 한미 관계 악영향을 우려할 정도이다. 미국의 한국 감청은 2013년 국가안보국(NSA) 감청 논란 이후 10년 만이다. 동맹에 대한 감청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사실 확인을 거쳐, 우리 정부는 미국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명확히 항의할 필요가 있다.
미 정보기관들이 국방부에 정보보고한 문건들이 사진 형태로 촬영돼 지난 3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량 유출됐다. 그 내용을 검증해 전한 NYT는 사법당국이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해당 정보기관들은 내용을 전면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출 정보 중엔 우리 관료들이 미군 포탄공급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 공급’이 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최근 물러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등장하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포탄 공급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놓고 논의하는 대목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한국 포탄 10만 발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우리 정부는 미군을 최종 사용자로 명시한 바 있다.
정부는 살상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입장인데, 민감한 주변 정세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유출 내용은 곤혹감을 더하고 있다. 더구나 중앙정보국(CIA)이 작성자인 해당 문건 내용 중에는 정보 출처가 ‘신호 정보 보고’(시긴트)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시긴트는 전자 장비 취득 정보, 즉 도·감청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도 비판받는 동맹국 감청에 우리 정부가 함구해서는 안 된다. NYT는 대통령실 입장을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달 윤 대통령이 방미를 앞둔 점, 사실관계가 더 명확해져야 하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흔들 유사 사태가 반복되고, 한미 간 불신만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