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 "'길복순' 일베 논란, 억울...심장 내려 앉더라" [HI★인터뷰①]

입력
2023.04.06 15:33

변성현 감독이 신작 '길복순'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주목 받아온 변 감독과 전도연의 만남에 힘입어 '길복순'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하지만 변 감독은 작품의 흥행에도 속 시원하게 웃지 못했다. 오랜 시간 변 감독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논란이 '길복순' 공개 이후 또 한 번 불거진 탓이었다.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변 감독은 자신과 '길복순'을 둘러싼 '일베' 논란에 "많이 억울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번 '일베' 논란은 길복순이 속한 킬러 회사에서 킬러들에게 임무를 내리는 장면에서 A급 킬러에게 '서울-코리아'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라고 적힌 지령 봉투를, 하급 킬러에게는 '전라-순천'이라고 적힌 봉투를 전달했다는 점 때문에 불거졌다. 지역과 국가를 기재한 다른 봉투와는 달리 순천은 '코리아'가 아닌 '전라'와 함께 기재된 것이 지역 감정을 나타낸다는 주장과 하급 킬러에게 '전라-순천'이 적힌 지령 봉투를 전달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된 것이다.

이와 함께 길복순(전도연)이 딸 길재영(김시아)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길재영이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와 위인들을 '사람을 죽인' 인물로 묶어 언급했다는 점도 '일베'의 성향을 담은 대사라는 주장이 더해지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논란이 된 장면에서 '순천-전라'라고 기재된 봉투 소품의 경우 연출부 친구가 미술 감독님께 컨펌을 받아 사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 누구도 이것이 특정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저 역시 수십 번 해당 장면을 봤었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논란이 불거지면서 연출부 친구가 제게 너무 미안해 하더라. 그래서 '정말 괜찮다'라고 말했다. 미술 감독님과 연락을 하면서는 감독님께 '그냥 감독님 고향인 충남 예산을 쓰지지 그랬냐'라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안중근 등 위인을 '살인자'로 표현한 길재영의 대사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서도 처음엔 너무 당황했었다"라며 "극 중 재영이가 그런 표현을 한 것은 엄마를 떠보기 위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유를 사용한 것이었다. 길복순도 딸의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신을 위해서 가장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대사에 넣은 건데, 그게 의도와 너무 다르게 받아들여지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전작 '킹메이커' 개봉 당시에도 '일베' 논란에 휩싸이는 등 꽤 오랜 시간 '일베' 의혹과 관련된 잡음에 시달려 왔던 변 감독은 "이번('길복순')에는 당연히 그런 논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킹메이커'는 정치 영화인 만큼 분명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었어요. 오히려 그 때는 '일베'라는, 저는 가 본 적도 없는 극우 사이트에서 공격을 받았었죠. 그렇지만 '길복순'은 아예 그런 논란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했었어요. 작품이 공개 된 이후 동네에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다가촬영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그런 논란이 있다는 것도, 평점 테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그 땐 정말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더라고요. '대체 왜?'라는 생각에 주변에서 보내준 논란의 이유를 읽어 봤는데, '이것도 해명이 필요한 건가' 싶더라고요.

모쪼록 영화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커요. 영화를 위해 같이 일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논란이 불거졌고, 그 원인이 저니까 미안한 마음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저는 완전 그(일베) 쪽 성향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몇 년 째 계속 이렇게 논란이 생기다 보니 제가 아니라 제 주변에도 피해를 주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함께 일하는 분들께도 미안했죠. 이제는 오해가 조금 풀렸으면 좋겠는데, 저도 방법을 모르겠어요. 제 해명을 통해 오해가 풀리셨다면 ('일베' 논란을 이유로) 낮은 평점과 혹평을 남기신 글은 조금 지워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한 두 명 정도는 그 글을 보고 작품을 안 보는 분들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게 너무 속상해요."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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