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테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은 신곡 '셋 미 프리 파트2' 뮤직비디오에서 독일어로 이런 문구를 상반신에 새긴 채 춤을 춘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릴케가 남긴 '넓어지는 원'의 한 구절이다.
시에서 원은 곧 나다. 누구나 저마다의 원을 그리며 살아간다. 2013년 방탄소년단 멤버로 데뷔해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 뒤 그룹 활동 휴지기를 거친 지민은 지난달 26일 첫 솔로 앨범 '페이스'를 발표했다. 그는 데뷔 후 9년 만의 홀로서기로 자신의 원을 넓혔다. '셋 미 프리 파트2'에서 지민은 '그간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이제 내 시간'이란 뜻의 영어 "아이 갓 어 굿 타임, 타임 투 겟 마인"으로 랩을 시작한다.
"제가 그간 느낀 공허함과 겪은 방황 등을 이 앨범 작업하면서 온전히 마주했어요. 그러고 나니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전의 내가 보이더라고요. 결국 음악을 통해 성장통을 극복했죠."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지민이 들려준 앨범 작업 뒷얘기다.
이렇게 나온 지민의 '페이스'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2위(8일 자)를 차지했다. 한국 솔로 가수 최고 순위다. 지난주 미국에서 지민의 앨범은 약 16만4,000장이 팔렸다. CD 판매량과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해 매긴 수치다. 빌보드는 2일(이하 현지시간) "지민의 앨범 음원 다운로드 수는 올해 들어 최고 기록"이라며 "다운로드 대부분은 타이틀곡 '라이크 크레이지'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 결과 지민은 '라이크 크레이지'로 빌보드 인기곡 차트인 '핫100'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 솔로 가수의 이 차트 최고 기록은 싸이가 2012년 '강남스타일'로 세운 2위였다.
지민의 앨범엔 총 6곡이 실렸다. 지민은 새로운 자아('페이스 오프')로 격렬한 사랑('라이크 크레이지')에 빠진 뒤 결국 혼자('얼론') 남아 진정한 나('셋 미 프리 파트2')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차례로 앨범에 담았다. 관악 연주와 합창으로 웅장함을 부각한 힙합부터 몽환적인 분위기의 전자 음악까지 아우르며 변화도 시도했다. "지민이 팝적인 강점을 최대화해"(미국 롤링스톤) "일상의 격동을 포착했다"(영국 NME)는 게 해외 음악지들의 평이다.
그는 '얼론'에서 "눈앞에서 웃고 있는 모두가 무섭게 느껴져"라고 노래한다. 지민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 쓴 노래"라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 웃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뒤에도 감정이 복잡하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멤버들은 다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난 뭐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도 들었고요." 이 불안과 혼란을 지민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곁에서 이겨냈다. 그는 앨범 속지에 이렇게 썼다. "혼자서는 처음이라 자존감도 떨어지더라고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렵잖아요. 나중에 방탄소년단이 모였을 때 더 빛날 수 있도록 성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