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주변에도 꽤 있었다. "모아 둔 수천만 원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 차익으로 다시 집을 샀다. 또 살 거다. 다주택자 중과? 임대사업자 등록하면 된다." 솔깃해서 슬펐다. "수천만 원도 없는데?" 답은 명쾌했다. "이자 안 비싸, 은행에서 빌려." "남의 돈으로?" "금리 오르면?" "집값 떨어지면?" 문답이 오갈수록 반감이 부러움을 밀어냈던 기억만 남았다.
얼마 전 개중 친한 이에게 근황을 물었다. "다 팔았어. 돈(차익)은 무슨, 말도 마." 그가 꺼렸을 법한 얘기는 김동욱·서현정 한국일보 기자가 최근 보도한 기획 기사 '갭투자, 독이 든 성배'에 두루 담겼다. 유튜브 등을 통해 전파된, 1,000만 원으로 아파트 수십 채를 사고 연봉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갭투자의 성공신화가 '갭거지'로 변모한 과정을 살폈다.
경제 용어로 통용될 정도라 기사엔 '갭투자'라고 썼지만 엄밀히 따져 여기엔 갭'투기'라고 적겠다.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이 설명한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이렇다.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방법에 있어 투자는 생산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지만 투기는 생산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 (중략) 부동산 가격의 인상만을 노려 일정 기간 후에 이익을 남기고 다시 팔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에는 부동산 투기 행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갭투자는 오로지 집값과 전셋값이 계속 오른다는 전망에 베팅하니 투기다. 전국 아파트값은 2014년 서울부터 상승세를 탔다. 서민 주거안정용 전세대출 및 전세보증 상품 출시와 뒤따른 임대차 3법 시행은 집값과 동반 상승하던 전셋값에 급속 엔진을 달았다. 전셋값이 집값에 육박(전세가율 급등)하니 수천만 원만 있어도 전세를 끼고 수억 원대 아파트를 사는 일이 쉬워졌다. 전셋값은 다시 집값을 밀어 올렸다. 역대 최저 기준금리 덕에 대출을 활용한 '무자본 갭투기'도 가능해졌다.
"남의 돈으로 여러분 명의의 소형 아파트를 사고 그게 모여 거대한 부자가 된다"는 갭투기의 교리는 그렇게 완성됐다. 약자를 위한 선의의 정책들은 갭투기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2030을 중심으로 너도나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갭투기에 나섰다. 2020~2021년 갭투기 거래 주택은 80만~100만 건으로 추산된다. 전체 거래량의 30~40%선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부터 경제 상황은 반전했다. 갭투기의 토대가 모두 무너졌다. 대출 이자는 오르고 집값과 전셋값은 동반 하락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역전세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갭투기 집주인이 늘면서 '갭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남의 돈에 기댄 것도 모자라 싼 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아 투기한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안타까운 건 거의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이 묶일 세입자다. 걱정되는 건 부동산시장에 미칠 악영향이다. 놀라운 건 최근 집값 하락 국면을 틈타 갭투기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 대응은 갭투기 구제가 아니라 세입자의 재산권 보호와 시장의 충격 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경제적 능력을 넘어선 갭투기는 아무리 포장해도 투자가 아니다. '남 탓' '세상 탓' 하며 세를 불려 책임을 회피하는 다수의 피난처도 아니다. 올바른 경제관념을 벗어난 일탈이다. 타인에게, 사회 전체에 고통을 떠넘기는 탐욕이다. '탐욕과 행복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아라비아 속담).'
*'갭투자, 독이 든 성배' 기사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8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