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밀가루처럼 가공... "장관 바뀌면 또 엎어질라" 우려 씻어야

입력
2023.04.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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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가루쌀]
지난해 내놓은 가루쌀 확대 방법·목적 
2010년 R10 KOREA 프로젝트 판박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돌아왔다. 정확히 12년 만에 가루쌀(분질미)이란 이름으로. ‘쌀 가공식품 확산을 통한 밀가루 사용량 10% 대체’라는 목적도, 방법도 똑같다. 부활한 가루쌀 정책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그래서 불안하다. “장관이 물러나면,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엎어질 수 있다”는 불신이 벌써부터 팽배하다.

2010년 3월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R10 코리아(KOREA)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고자 밀가루 소비량의 10%를 쌀가루로 대체하자는 일본의 ‘R10 프로젝트’에서 따온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이를 위해 쌀 가공식품 연구개발(R&D)과 가공시설 투자금을 지원하고, 쌀을 이용한 과자·호두과자·두부 등 가공식품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논에 벼 외에 다른 작물을 기르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살펴보겠다고 했다. 현재 농식품부가 가루쌀을 확대·보급하고자 추진하는 정책과 ‘판박이’다.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 안에선 잊힌 사업이 됐고, 농심·CJ 등이 뛰어든 쌀가루 사업은 날개를 펴지 못했다. 밀가루 시장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되지 못한 탓이다.

물론 그때와 다른 점은 있다. 검토 수준에 그쳤던 벼 이외 재배작물에 대한 보조금이 올해부터 전략작물직불금이란 이름으로 시행돼 가루쌀 확대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쌀가루는 물에 불려야 해 가공비용이 많이 드는 일반 멥쌀을 썼지만, 이번 가루쌀 정책의 주인공(바로미2)은 곧바로 빻아 사용할 수 있다. 가공비용이 적다는 게 큰 장점이다.

하지만 과거 물거품으로 끝난 정책과 목적·수단이 모두 같은 만큼 현장에선 이번에도 흐지부지될까 우려하고 있다. 2017년부터 가루쌀을 재배해 온 장수용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장은 “정부가 바뀌면 가루쌀 정책이 또다시 중단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한때 반짝한 우리밀 살리기 운동(2008년), 한식 세계화 운동(2010년)처럼 여겨질 경우 투자 부진으로 가루쌀시장 형성이 제대로 안 되고, 결국엔 가루쌀 정책의 연착륙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장재호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가루쌀의 밀가루 대체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고, 가루쌀 정책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음 정부에서도 가루쌀 정책이 계속되도록 강제할 방안이 없는 만큼 임기 내 정부 지원 없이도 민간에서 가루쌀 수요·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쌀 가공식품 개발로 가루쌀시장을 만들고, 그로 인한 수요 증가가 가루쌀 수확량 확대와 경작비용 감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루쌀(분질미)은
2019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바로미2)은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를 만들 수 있는 쌀 품종이다. 2012년 개발한 가루쌀 '수원542'를 개량했다. 전분 구조가 밀가루처럼 둥글고 성글어 물에 불리지 않고도 건식 제분이 가능하다. 제분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쌀 제품화에 효율적일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생육기간이 일반 벼보다 20~30일 짧아 생산비가 적게 들고 밀·조사료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정부는 가루쌀로 밀가루의 10%를 대체,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낮은 식량자급률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세종=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