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얘기를 한번 할까 한다. 이미 언론이 앞다퉈 소개한 터라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검찰이란 조직의 생태를 파악하는 데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검사장)의 회고록이다.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기록과 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전 검사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적 결말과 함께 검찰에서 불명예 퇴직하게 된 경위를 소개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는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마저 곁에 없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라고 말한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질문에 스스로 내놓은 답변이다.
의도는 이렇듯 분명하지만, 눈에 띄는 건 정작 다른 대목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최(태원) 회장에 대해 계속해서 수사할 경우 최 회장은 SK그룹 경영권을 잃을 수 있지요? 수사는 더 이상 확대하지 않을 테니,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 정치 자금 내역을 밝혀 줄 수 있겠습니까?” SK글로벌 분식회계로 구속된 최 회장을 사무실로 불러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했다는 말이다.
이 전 검사장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계속 이어진다. 삼성 이모 부회장을 면전에 두고, 그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는 겪어 보지 못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LG 측 변호인에게는 “한나라당에 200억 준 거 다 알고 있어. 협조하지 않으면 지주회사 설립, 계열 분리와 관련해서 저질렀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모두 수사할 거야”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적었다.
LG 측이 협조하지 않자 이 전 검사장은 행동에 나섰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보여줘야 할 순간이다. 이 수사를 위해선 삼성·LG·현대(자동)차 등 재벌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LG홈쇼핑을 압수수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압수수색 이후 “계열 분리 과정에서 구씨와 허씨 일가의 지분관계 정리 방법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LG홈쇼핑이었고, (이를 통해) LG그룹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 전 검사장의 이 같은 기억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평가하려는 마음은 없다. 해석과 평가는 어차피 회고록을 읽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가 책에서 ‘압박’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고, ‘협조하지 않으면’이라는 가정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식의 엄포를 수사 때마다 반복했다는 사실 정도를 언급하면 충분할 것 같다.
다만 그의 후배 검사들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한다. 이 전 검사장이 말하는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진실”을 들어보라는 얘기는 아니다. 피의자를 향해 “검찰이 우습게 보이냐”고 호통쳐도 문제 안 되던 ‘검사 전성시대’의 이 전 검사장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제안이다.
더불어 “지금 우리 검찰 수사는 어떤가”라는 질문도 꼭 해봤으면 좋겠다. 협박과 별건수사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옛날 얘기라고 자신 있게 답하는 검사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쉽게도 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거란 장담은 절대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