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7시 50분. 이른 아침이지만 서울 성북구 고려대 학생식당에서는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부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이 포착됐다. 목적은 하나. 모두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아침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려대는 20일 선착순 600명을 대상으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800명 넘게 학생들이 몰리자 24일부터 아예 인원 제한을 없앴다. 긴 대기줄이 사라지면서 조식을 기다리며 여유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어일문학과 재학생 김모(21)씨는 “‘오픈런’을 안 해도 돼 더 좋다”고 미소 지었다. 오전 8시 배식이 시작되자 식당은 학생들로 금세 꽉 찼다. 하루에 보통 900명 정도가 찾는다고 한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향한 대학생들의 호응이 뜨겁다. 고물가에 밥 사 먹기도 힘든 청년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반향은 나쁘지 않았다. 정부는 사업 규모를 두 배 키우기로 했고, 여당 대표가 직접 식당을 찾아 함께 밥을 먹는 등 정치권도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천원의 아침밥 지원 대상을 69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예산도 두 배 이상(종전 7억7,800만 원) 증액돼 15억8,8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천원의 아침밥은 말 그대로 대학생에게 조식을 1,000원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각 대학에 아침 한 끼당 1,000원씩 지원하고 학교가 나머지 금액을 부담한다. 청년층의 아침식사 결식률을 줄이고 쌀 소비를 늘리자는 취지에서 2017년부터 시작됐지만, 물가가 크게 오른 탓에 올해만큼 각광받은 적이 없다. ‘짜장밥, 만두 튀김, 계란국’ 등 1,000원 치곤 메뉴도 알차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실제 지난해 대학생 5,437명에게 물어보니 사업 지속을 바라는 응답이 무려 98.7%나 됐다.
원래 농식품부는 올해 사업 참여 대학(41곳) 선정이 끝나 추가 접수에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청과 각계의 응원이 쏟아지면서 방침을 바꿨다. 내달 중 공고를 내 추가 참여 대학을 모집하는데, 이미 선정된 대학도 원하면 지원 규모를 늘릴 수 있다.
대학들 역시 자체 예산을 투입하는 등 더 많은 학생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고려대는 동문모임인 교우회가 지원한 2억5,000만 원 상당의 졸업생 기금으로 인원 제한을 없앴고, 경희대는 기존 100명에서 130명으로 대상 규모를 늘렸다. 현재 130명에게만 1,000원의 아침밥을 주는 가톨릭대도 찾는 학생이 매일 20명 정도 초과해 인원 확대 방안을 고심 중이다.
대학생들은 모처럼 정부가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내놨다며 반기고 있다. 고려대 재학생 이모(23)씨는 “1,000원으로 아침을 든든히 해결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때우는 식으로 생활비를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톨릭대 학생은 “아직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시행하지 않은 다른 대학 친구가 무척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다만 청년 표심에 민감한 정치권의 속성상 갑작스러운 관심이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을까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려대 3학년생 김모(21)씨는 “사업 유지를 위해 국회가 얼마나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희대 4학년생 윤모(23)씨도 “주변에 취업한 선배들이 한 명도 없다”면서 “1,000원의 아침밥처럼 정부가 고용 문제도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