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멍든 채 숨진 초등생...친부, 살해죄 물을 수 있나? 정인이 사건 보니

입력
2023.03.25 16:00
인천 초등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
아빠에겐 '상습학대, 유기·방임'만 적용
"법원은 기존의 해석 틀 넘어서야"

지난달 7일 인천의 한 아파트. 계모(43)는 계속된 폭행에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12·초등학교 5학년)의 가슴을 양손으로 밀쳤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아이는 그대로 숨졌다.

사인은 부출혈로 인한 쇼크. 오랫동안 온몸에 지속된 폭행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부검 결과 아이 다리에 난 상처만 232개였고, 사망 이틀 전엔 16시간 동안 의자에 묶여 있었다. '인천 초등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다.

아이에게 지옥보다 끔찍했을 이 집에는 두 명의 어른이 있었다. 지난해 3월부터 때리고 묶고 감금했던 계모, 그리고 계모의 학대를 방조하며 함께 아이를 때리고 감금했던 친부(40). 수사기관이 밝혀낸 신체·정서적 학대만 해도 계모가 50회, 친부가 15회다.(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이 제출받은 검찰 공소장)

아이를 사망하게 한 계모에게는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됐지만, 친부에게는 상습아동학대와 상습아동유기·방임죄가 적용됐다.

이혼한 남편이 아이를 보여주지 않아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던 친모는 절규한다.

“친부는 아이 사망 당시에 집에 없었다는 이유로 현재 상습 아동학대와 유기, 방임으로만 기소되어 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학대 사실을 계모한테만 떠넘기고 있고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친부 또한 지속적인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살해죄 공범으로 봐야 합니다.”(친모가 올린 국회 국민동의 청원 ‘인천 초등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친부 정범 살해죄 공소장 변경요청에 관한 청원‘ )


아이 살해될 때 집에 없었던 아빠들

인천 초등생 사망 사건은 2020년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던 ‘정인이 사건’과 닮았다. 생후 8개월 정인이(사망 당시 16개월)를 입양한 양모는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자동차 안에 아이만 혼자 두는 등 학대했고, 양부는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 정인이가 양모에 의해 살해되던 당시 양부는 집에 없었다. 양부는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인이가 사망하던 날 "형식적으로 병원에 데려간다"는 양모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그래야겠다. 번거롭지만"이라고 답했던 그다.

2021년 ‘양부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한 시민단체가 양부를 살인 공모 등의 혐의로 추가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이 정한 양부 죄의 무게는 징역 5년. 대법원은 지난해 정인이 양부에게 징역 5년, 양모에게는 35년을 확정했다.


"법원, 기존 해석의 틀 넘어서야"

사망 현장에는 없었지만 아이 폭행에 가담하거나 오랫동안 학대를 방치해 온 양육자에게 아동학대살해죄를 적용하는 건 불가능할까. 김한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살해 행위 현장에서 살해 고의를 가지고 살인 결과에 이르는 행위에 가담했다면 아동 살해죄 공범으로 부모 양쪽이 처벌을 받는 게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학대 또는 폭력적 학대를 방치했다는 것으로는 어렵습니다. 정인이 사건도 그렇고, 일반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아빠도 살인의 공범’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형사재판은 다른 영역이니까요. 공동 양육자가 아이의 생명을 빼앗았을 경우 다른 양육자의 책임을 더 물을 수 있게 새로 입법을 한다면 고민해볼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형사소송 구조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무법인 동진 박우근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친부에게 살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이론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측면에서 엄한 처벌이 내려질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법원이 친부에 대해서도 기존의 해석 틀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몸무게 9kg 빠진 아이, 집에 두고 여행 가면서도 "몰랐다"니

인천 초등생 친부는 '학대가 이렇게 심각한지' 정말 몰랐을까.

지난달 심정지로 인천의 한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아이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키 149cm에 몸무게 29.5kg. 또래 평균보다 15kg이나 적은 몸무게로, 2년 전(2021년 38㎏)보다 오히려 9㎏이나 빠져 있었다. 친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같이 살던 일곱 살 때 사준 내복을 열두 살 죽는 날에도 입고 있었다”며 울었다.

이들은 온갖 이유로 아이를 학대했다. 계모는 '말을 듣지 않아서' '산만해서' 폭행했고, '장난치고 웃었다'며 벌을 세웠다. 새벽에 성경 필사를 하지 않았다고 때리거나 감금했다. 친부 역시 '성경을 안 썼다'고 아이를 때렸다. 아이가 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방치했고 얼굴에 바지를 씌운 채 의자에 묶어뒀다. 온몸은 멍투성이였고 뾰족한 것에 찔린 상처 등 다리에서만 232개의 상처와 흉터, 딱지 등이 발견됐다.

이들 집 내외부에는 CCTV도 설치돼 있었다. 아이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친모는 "지난 1월에는 아이만 방에 감금한 후 며칠 동안 여행을 간 사실과 정황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방조한 부모 가벼운 처벌, 또다시 억울한 피해자 나올까 우려"

이들은 친모가 아이를 구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앗아갔다. 친모는 남편의 외도와 폭력 등으로 2018년 이혼했고 경제력이 없어 아이 양육을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아이와의 면접 교섭 약속을 지키지 않아 두 번밖에 보지 못했고, 몰래 아이 학교에 찾아갔다가 계모와 친부로부터 거센 항의를 들었다. 당시 계모는 “친아들처럼 키워 온 아이를 내줄 수 없다”며 울기까지 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3월 18일 보도 내용)

그날 이후 친모는 아이와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 9개월 만에 다시 만난 아이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었다. 친모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글의 일부다.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두 가지를 모두 겪은 것은 가장 처참한 죽음입니다. 더구나 아이는 그 굶주림과 아픔을 모두 인지할 수 있는 나이였고 아이가 죽음의 순간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너무나 무서웠을 그 고통을 감히 제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친부 또한 살해죄 공범으로 보아야 하며 가해자들에게 선처 없는 무거운 형량이 내려져야 합니다. 사망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친부에게 상습 아동학대 혐의만 적용이 된다면 또 다른 가해자들에게 악용되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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