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보다 절박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연금개혁

입력
2023.03.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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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연금개혁 의지를 거듭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인터뷰 다음 날인 23일(현지시간) 프랑스 곳곳에서 거센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민 지지를 받지 못한 개혁안을 의회를 건너뛰는 초강수까지 두며 밀어붙인 마크롱 방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선 공약임을 동력 삼아 모처럼 시작했던 연금개혁 논의가 진척은커녕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 국내의 답답한 상황과 대비될 수밖에 없다. 자칫 연금개혁의 불씨마저 사라진다면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 모두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명분은 지금 아니면 재정 악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 있다. 연금개혁의 시급성만큼은 우리도 다르지 않다. 이대로라면 2055년 적립기금이 바닥난다. 5년 전 계산했을 때보다 소진 시점이 2년이나 당겨졌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가 워낙 급속한 탓에 연금 받을 사람이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빨리 증가할 거란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도 개혁은 헛바퀴만 돌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가 모수개혁(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조정)을 논의할 때만 해도 가능성이 보였으나, 연금특위가 구조개혁(기초·퇴직·직역연금 함께 조정)으로 돌연 방향을 바꾸면서 길을 잃었다. 자문위는 합의안 없이 여러 의견을 나열한 경과보고서를 다음 주에야 내놓는다 하고,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실은 뒷짐 진 채 국회만 바라본다. 부담을 피하려고만 할 뿐 누구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는다.

내년 4월 총선 등 개혁 동력이 떨어질 구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올 10월까지 최종 개혁안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프랑스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와 국회가 추진력을 발휘하고, 고달프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하기 바란다. 향후 국제사회는 한국과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비교 평가할 것이다. 과정도 결과도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