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 공백 메울 묘수? 병원들 묶어 질환별 '순환당직' 도입

입력
2023.03.21 15:00
복지부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 확정
중증·중등증·경증 응급의료기관 명확히
단기 대책으로 요일별 당번병원 추진

정부가 휴일과 야간에 중증 응급환자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병원별 순환 당직제를 도입한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질환 경중에 따라 응급의료센터를 체계화하고 응급의료 정보를 의료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모바일 앱도 개발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 응급의료정책 방향을 제시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21일 확정·발표했다. 기본계획은 응급의료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데 4차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추진한다. 큰 축은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체계 구축과 고질적인 응급실 과밀화 해소다.

지역 내 의료기관 협력으로 사회안전망 강화

4차 기본계획의 지향점은 '전국 어디에서나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다. 응급의료는 공적 개입이 불가피한 영역인 만큼 복지부는 △환자 이송 △병원 △전문 분야 △인프라 단계에서 공공재로서의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별 의료기관이 24시간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응급환자는 협력 네트워크 체계로 대응한다. 지역 병원들이 중증질환별 순환 당직(요일별 당번병원제)을 운영하고 타 의료기관으로 전원 의뢰·회송이 용이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신속한 환자 이송을 위해 증상별 의심 질환, 인근 응급실 혼잡도 등을 포함한 응급의료자원정보시스템(종합상황판)을 환자, 구급대, 의료기관 등 수요자별 맞춤형 플랫폼으로 전면 개편한다. 종합상황판에는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이 10분 간격으로 제공한 정보가 통합돼 표출된다.

올해 8대인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는 취약 권역에 추가 배치해 2027년까지 12대로 늘리고, 중증 환자 이송을 전담하는 '모바일 중환자실(ICU)' 차량은 현재 1대에서 단계적으로 확충한다.

심정지나 쇼크 환자의 심전도 측정과 채혈 등이 가능하도록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도 확대한다. '응급환자 수용 곤란 고지 프로토콜'을 만들어 이송 중인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기관의 수용 책임도 높인다.

119구급대, 의료기관 등 지역 내 응급의료 주체 간 협업을 통해 신고부터 이송, 진료, 전원까지 전 과정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지역응급의료체계 평가' 제도도 처음 도입한다. 이런 대책들을 통해 올해 49.6%인 중증 응급환자 적정시간 내 최종 치료기관 도착률을 2027년에는 6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응급의료 개선의 선결 조건, 응급실 과밀화 해소

중증 응급환자의 골든타임 내 치료를 위해서는 응급실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경증 환자까지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게 현실이다. 2021년 119 구급서비스 통계 연보에 따르면 환자 재이송 사유 중 16.2%는 '응급실 병상 부족'이었다.

복지부는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구분된 응급의료 전달 체계를 각각 중증, 중등증, 경증 환자 치료를 전담하도록 2026년까지 개편한다. 환자 경중에 관계없이 응급실이 북새통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에 응급의료가 필요한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개발도 기본계획에 넣었다. 비응급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을 줄이기 위해 높은 본인부담금 사전동의 절차도 마련한다.

중환자실과 수술실 등이 응급환자를 위해 우선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응급환자 전용 입원실 관리료 신설, 중환자실 관리료 가산 등의 제도적 기반도 갖춘다. 우수 인력 확충을 위해서는 △최종 치료 의료진 당직 보상 △응급의료 수익이 의료진에게 배분될 수 있도록 구조 개선 △적정 근로시간 보장 등을 검토한다.

또 위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의무교육 대상을 확대하고 자동심장충격기(AED) 위치를 모바일 지도 앱에 표시한다. 응급처치로 발생한 상해·사망사고에 고의성이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 범위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의료는 정책적 시급성과 중요성이 높은 분야"라며 "전국 어디서나 응급환자 발생 시 골든타임 내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직은 '계획', 관건은 '실행'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 응급환자를 치료하겠다는 목표는 선명하지만 현실 적용은 또 다른 문제다. 병원 간 순환 당직만 해도 3차 기본계획에 언급이 됐었지만 일부 지역 시범 사업에 그쳤다. 4차 계획에도 도입 시점은 불분명하다. 지자체 및 의료계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의료기관이 많은 수도권과 광역시 정도를 제외하면 순환 당직을 설 전문의 자체가 부족한 지역도 허다하다. 박향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근본적인 대책이라기보다 2026년 응급의료 전달 체계가 구축되기 전까지의 단기 대책"이라며 "이후 중증 의료센터는 반드시 시행하도록 강제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확대는 벌써부터 임상병리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심전도 측정 등이 고유 업무인 임상병리사들은 총력 투쟁을 선포하고 복지부를 항의 방문하는 등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복지부는 "이송 과정과 의료기관 내 응급실에서만 심전도 측정이 가능한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는 입장이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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