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고령자 1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하소연. 바로 "마트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무심코 한 귀로 흘려들었던 노랫소리는, 청력이 온전치 못한 고령자들에겐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거대한 벽'과 같았던 것이다.
통계청 추계상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 하지만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고령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정부와 기업의 준비는 여전히 미흡하다. 당장 고령 고객을 맞아야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하루에만 어르신 수십 명을 응대하는 콜센터 직원, 갈수록 늘어가는 고령 민원인 탓에 힘겨워하는 주민센터 공무원까지. 서비스 현장에선 고령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는 국내외 6개 지방자치단체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고,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 검수를 거쳐 △시력 저하 배려 △청력 저하 배려 △안전한 환경 △직원 교육 △서비스 편의 제공 등 총 5개 영역 23개 항목으로 구성된 한국일보판 '친(親)어르신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닥쳐온 초고령사회에서 고령 소비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가 담긴 가이드라인이다.
우선 어르신의 노화에 따른 시력·청력 저하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 7개를 제시했다. 매장은 ①적절한 밝기를 유지하고, 출입구 및 계단 등에 부분조명을 활용해야 한다. 메뉴판이나 안내문을 제작할 때는 ②큰 글씨와 읽기 쉬운 서체(돋움, 고딕)를 사용하고 ③밝은 색이되 온화한 분위기의 고명도 배색을 사용하며 ④과한 패턴이나 많은 색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어르신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읽기 쉬운 서체를 써서 직관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면서 "기울임체나 밑줄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나이가 들면 파란색은 검은색으로, 자주색은 빨간색으로 보인다"며 "조명의 경우 백열등보다 조도가 높은 형광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또 ⑤배경음악 소리를 낮게 하고, 주변 소음을 조절할 필요도 있다. 점원은 어르신을 응대할 때 ⑥큰 소리보다는 중저음으로 천천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좋다. 또 ⑦휴식을 위한 별도의 조용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근영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교수는 "어미를 강하게 발음해 고령자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야 한다"며 "입의 움직임을 확실히 보일 수 있다면 좋고, 표정이나 몸짓 등을 사용하는 것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낙상이나 충돌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동 편의를 위해 ⑧쉽게 여닫을 수 있는 출입문이나 자동문을 설치하고 ⑨통로나 화장실 등에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통로에 상자나 물건을 쌓아놓지 않는 것도 어르신을 배려하는 출발점이다.
또한 ⑩이동 공간에는 손잡이를 설치하고, 앉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⑪바닥을 미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⑫단차·계단·경사 등은 최소화하고 경사로를 설치하며 ⑬경사로를 만들 수 없다면 표지판 등으로 위험 표시를 하는 것이 좋다. 바닥 재질은 빛이 반사되어 번쩍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마트나 편의점 등에선 ⑭고령자가 많이 찾는 상품을 어르신 눈높이에 맞춰 손 닿는 곳에 진열하는 것이 좋다. 신근영 교수는 "어르신에게 상품이 잘 팔리는 '황금존'은 일반 평균보다 20~30cm 낮은 위치"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고령자를 직접 맞이하는 직원들의 표현이나 태도도 중요하다. ⑮전문용어·외래어·신조어·줄임말 사용을 자제해야 하며 ⑯할아버지, 할머니 호칭보다 이름과 존칭을 사용하고 ⑰인내심을 가지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오상우 동국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표현의 경우 어르신을 자극할 수 있는 문구는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고령자가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등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하다. ⑱치매나 사기 피해 징후 등을 알아챌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고 ⑲심폐소생술 등 응급상황에 대처할 기술 교육도 동반돼야 한다.
배순영 한국소비자원 수석연구위원은 "어르신 고객 응대에 대한 책임이 말단 직원에게만 전가돼서는 안 된다"며 "분기별로 최고경영자(CEO)가 참여하는 회의를 열고, 고령자 고객의 소리(VOC)를 전 직원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의 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⑳고령소비자를 도울 수 있는 전담 직원을 배치하고 ㉑경로우대제도나 관련 이벤트를 통해 고령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좋다.
고령자들이 스마트폰이나 무인 키오스크 등 디지털 플랫폼 사용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㉒온라인·전화·대면 서비스를 수요에 따라 다양하게 제공해 선택권을 넓히는 것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 ㉓지역사회에서 고령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의 정보 또한 제공해야 한다.
배순영 수석연구위원은 "어르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는 이번 작업은 백세시대를 맞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택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고령친화서비스단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이라며 "단순한 이 원칙 하나만 지키더라도 어르신들은 어떤 서비스든 대부분 만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3회> 어르신 고객, 이렇게 맞이합시다
▶"노인 고객 홀대하진 않았나요?" 암행어사까지 보내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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