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한 카센터. '오늘은 쉽니다'라는 팻말이 걸렸지만, 정비사들은 분주하게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고장난 부품을 교체했다.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 1호' 김관권 한국폴리텍대 자동차학과 명예교수는 박정호 카사랑 대표와 함께 차주들을 맞았다. 김 교수의 정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맞물려 3년간 중단했던 장애인 대상 자동차 무료 점검 봉사를 재개한 날이었다.
김 교수는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1년간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운전자를 대상으로 무료 점검 봉사를 했다. 이 기간 무료로 점검을 받은 차량은 3,000대가 넘는다.
김 교수가 무료점검 봉사를 시작했던 계기는 어려움을 딛고 정점에 올랐던 그의 인생에 다시 한 번 주어졌던 시련 때문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 대신 자동차 정비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김 교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경야독한 결과 1990년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 1호로 선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그는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8일 만에 깨어났지만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수준인 후유장애를 얻은 뒤였다. 김 교수는 좌절하는 대신 "다시 얻은 제2의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재활 과정에서 절감한 것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는 자신이 필요할 때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무척 소중한 이동수단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운전하는 차는 많은 비용을 들여 특수 개조한 차인 경우가 많아 교체 주기가 길고, 경제여건이 어려운 경우 정비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비 실습을 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학교측을 설득했고, 점검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김 교수의 무료 점검 봉사는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현업에 나가기 전, 실제 정비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카센터를 내어준 박정호 카사랑 대표도 김 교수 제자였다. 박 대표는 정년을 맞은 김 교수가 2021년 8월 명예교수직으로 물러나며 불가피하게 정비 봉사를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 교수는 제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차례 고사했다. 대학에서 점검 봉사를 할 땐, 학교에서 정비 장소와 부품 비용을 제공해줬지만 일반 카센터에서 할 경우에는 부품비용 뿐 아니라 카센터 하루 매출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노후 차량이 많은 만큼 점검 차량 대부분은 손볼 곳도 많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제가 해보겠다"며 거듭 의지를 전해왔다.
박 대표는 김 교수의 무료 정비 봉사를 잇기로 한 이유에 대해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여건이 된다면 교수님처럼 정비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학생으로 김 교수를 만난 건 50대 나이에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했던 2014년. 만학도였던 그는 배움에 간절했다. 김 교수는 몸이 불편했지만 제자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사비를 털어 장학금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정비를 받은 박해열(59)씨도 점검 봉사에서 김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열아홉 살 때 바이러스성 척수염을 앓은 후 걸을 수 없게 됐던 그가 서른살 무렵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였다고 했다. 박씨의 차에는 발로 작동하는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 대신 손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 핸들컨트롤러가 설치돼 있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는 사실상 전혀 불가능하다"며 "장애인용 콜택시가 있기는 하지만, 서너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아플 때 병원조차도 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오래된 차가 나에겐 다리이자 날개"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때로 카센터 문턱마저 높다. 이날 오후 카센터에서 만난 김종순씨는 "장애인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카센터가 많지 않은데, 김 교수에겐 항상 편한 마음으로 점검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불편한 몸을 보면 눈빛부터 달라지거나, 핸들컨트롤러 등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의 경우 '작동 방법을 모른다'며 아예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귀띔했다.
제자가 매달 1회씩 무료 점검을 하기로 하며 무료 점검 봉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지만, 김 교수는 장애인 이동권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들은 이동 수단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며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지만 자동차 점검 지원 관련 제도가 마련된다면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