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부동산시장은 '갭투자' 무대였다. 1,000만 원으로 아파트 수십 채를 사고, 연봉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2015년부터는 유튜브와 책, 인터넷 카페, 모임 등을 통해 '갭투자 지침서'가 쏟아졌다. 2023년, 성공신화로 여겨졌던 지침서는 역전세 속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당시 유행한 핵심 구호는 '1,000만 원으로 아파트 사기'다. 어떻게 가능할까.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끼면 된다. 예컨대 1억 원짜리 집을 산다고 하면 9,000만 원짜리 전세 계약을 이전 집주인으로부터 이어받거나 새로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다. 2년 뒤 전셋값이 1억 원으로 올라 새로 계약하면 1,000만 원의 수익을 벌게 된다. 벌써 투자금을 회수한 셈이다.
이때 번 1,000만 원으로 아파트 1채를 더 산다. 2년 만에 보유 주택이 2채가 된다. 따로 저축을 해둔 게 있다면 아파트를 더 산다. 마이너스통장을 뚫어 자금을 조달해서라도 집을 20채, 50채, 100채로 늘리는 게 지침서가 내건 목표다.
이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전셋값은 9,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반드시 오르지 않는다. 전국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지수(한국부동산원)는 집계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1년 8월까지 우상향 곡선을 보이다가 지난해 6월 이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6월 128.2로 고점을 찍었던 지수는 12월 115.3까지 내려왔다. 2020년 10월 수준까지 추락한 것이다.
갭투자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집을 팔지 않는 이상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데다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이자가 오르면서 세입자를 구할 수 없다. 갭투자자 B씨는 "세입자가 재계약은 안 하겠다고 하고, 주변 전셋값은 계속 떨어지는 터라 계약 만기가 반년 넘게 남은 집을 매맷값 고점 대비 1억 원 낮춰 급히 팔았다"며 "갭투자로 남는 게 없고 스트레스만 받으니 남은 부동산도 정리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수십 채를 갖게 되면 세금이 막대하지 않을까. 이때 지침서가 내놓은 해법은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이다. 2016년 기준 일부 등록 주택에 대해서는 재산세나 양도소득세가 감면되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주택임대사업을 '소자본으로 무한대의 수익성이 보장되는 가장 안전한 투자'라고 꼬드기는 배경이다.
그러나 정부가 2018년 갭투자를 막기 위해 임대사업자 규제를 내걸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임대사업자가 부기 등기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되고, 전세보증보험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종부세 합산 배제도 사라졌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임대사업자는 보증금 반환 목적이라고 해도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이달 들어 풀렸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남아있어 보증금 반환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지침서를 내놨던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때 수십 명의 수강생을 유치했던 C컨설팅업체는 2020년부터 갭투자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부동산 사업을 접었다. C컨설팅 관계자는 "지금은 거래도 안 되고, 매맷값 대비 전셋값이 낮아서 투자할 곳도 없다"고 전했다. 지침서가 예견하지 못한 현실이다. 김효선 NH농협 부동산 수석위원은 "당장의 전세가율만 믿고 뛰어들기보다 경기 전망이나 입주물량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