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번영 새출발' 선언…징용 호응조치는 없어

입력
2023.03.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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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외교 12년 만 복원·수출규제 해제
日, 강제동원 반성·사과 언급도 없어
성의 있는 후속조치 반드시 뒤따라야


한일 정상이 어제 오후 일본에서 회담했다. 85분 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정상 셔틀외교 복원'이자 '한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또 경제안보대화 신설, 외교·국방 안보정책협의체 재개 등 고위급 정책대화 채널 운영에 합의했다. 멀게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가깝게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경색됐던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두 정상은 회담 후 도쿄 번화가 긴자에서 2차에 걸친 만찬을 했다.

두 정상은 이날 오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을 비판하며 안보협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정상화해 북한 미사일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이듬해 주고받은 경제 제재도 해제하기로 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풀고 한국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상대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 대상국) 지위를 박탈했던 조치도 조속히 복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강점이 있는 일본과 교역을 늘리고 공급망 구축에 협력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양국 정상은 사회·문화 분야 협력에도 뜻을 모았다. 특히 미래세대 교류 활성화에 방점을 찍었다. 한일 재계 대표 단체인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각각 10억 원을 출연해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설립하고 양국 협력방안 연구, 공통과제 해결 , 젊은 인재 교류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제시한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일본이 제대로 호응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총리 명의의 강제동원 사과·유감 표명 요구를 피해갔다. 가해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대위변제 기금 출연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뿐더러 신설 기금에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이들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지 않는다고 재차 확약했다.

징용 해법은 이번 회담 성사의 결정적 기반이었던 만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로 징용 해법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감이 증폭된다면 회담 성과마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역사가 지워지지 않는 이상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은 성공하기 어렵다. 두 정상이 강조한 한일관계의 '미래'가 '과거'에 또다시 발목잡히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성의 있는 후속 조치를, 한국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깊은 위로와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모처럼의 한일관계 회복 기회를 살릴 수 있다.

정부는 한미일 공조 일변도의 안보정책이 불러올 여파도 유념해야 한다. 엄중한 안보현실상 3국 안보협력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나, 구도에 매몰되지 말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일본이 신냉전 구도에 편승해 군사대국화를 꾀하고 있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