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앞둔 노인에게도 "역시 MZ"…K콘텐츠의 '일그러진 청춘'

입력
2023.03.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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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풍자 콘텐츠 인기 속 '부정 묘사 일색' 우려 목소리 높아
"20~40대 초반까지 묶고 20대만 특정해 묘사"
"'요즘 것들' 묶는 마법의 언어처럼 써선 안 돼"


2083년,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힘겹게 말을 건넨다. "할아비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그러자 돌아온 손녀의 한마디. "할아버지, 마지막까지 자기 할 말만 하는 거 역시 MZ(1980~1994년에 태어난 M세대, 1995~2004년에 태어난 Z세대를 묶어 이르는 말)다!"

코미디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가 업로드한 콘텐츠 '역시 MZ네'의 한 장면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약 한 달 전 올라온 이 콘텐츠는 154만 조회수(19일 기준)를 넘겼다. 죽을 때까지도 'MZ세대론'에 갇힌 MZ세대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자학이 통한 셈이다. 주인공은 2023년부터 "역시 MZ네"란 말에 시달린다.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박진호입니다"라는 평범한 말에도 상사는 "자기 PR 확실한 것 좀 봐. 역시 MZ네"라고 받아친다.

이런 풍자 콘텐츠까지 나온 배경엔 MZ를 단편적이고 획일적으로 묘사한 K 콘텐츠가 있다. 최근 MZ세대를 풍자하는 코미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왜곡된 특정 세대의 이미지 소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사례의 성급한 일반화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화제가 된 K콘텐츠 속 MZ세대 묘사를 놓고 '부정적 묘사 일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 3'의 'MZ오피스'가 대표적인 예. '전담하다', '십분 이해한다'는 말의 뜻을 모르는 문해력 떨어지는 지원자나 3시간 만에 사표를 던지고 "일당 입금 부탁한다"고 메시지만 남기는 인턴 캐릭터가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의 눈에서 새로운 세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데다가 'MZ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니 '옳다구나' 하며 매체나 콘텐츠 제작자들이 MZ를 별종처럼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 모든 캐릭터가 MZ라고 불리면서도 결국 전부 20대 청년으로 그려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0년생 직장인 박모(23)씨는 "MZ세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인데도 콘텐츠상에선 20대로만 일반화되는 부분이 황당하다"면서 "나이 든 사람들이 괜히 젊은 사람들을 탓하고 싶어서 MZ세대를 핑곗거리 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최신 유행 감각을 묘사할 때 무조건적으로 MZ를 붙이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선 배우 김광규가 MZ 감성을 찾겠다며 요즘 유행이라는 여행지 우도로 떠나는데, 이를 보던 패널 코드 쿤스트가 "MZ 없으면 우린 방송 못해?"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다. 전혀 감각적이지 않은 참가자를 향해 "영(young)한데? 완전 MZ인데요?"(지난해 방송된 MBN 메타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바타싱어' 심사위원 립제이의 말)라고 뱉은 한 출연자의 말은 '밈'이 됐다. 주로 MZ세대와 전혀 무관한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비꼬기 위한 표현으로 쓰인다.

전문가들은 매체가 동시대의 문제를 특정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늘 반복돼 온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책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는 "과거 X 세대(1965~1976년생)를 문제적 세대로 불렀듯 각 시대 불거지는 문제의 원인을 새로운 세대에게서 찾는 현상이 반복되는데, 요즘 시대엔 MZ가 바로 그 '마법의 단어'가 된 것"이라면서 "어떤 문제든 'MZ탓'으로 끼워 맞추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젊은 세대의 본질을 들여다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풀이했다.

특히 세대 구분 자체가 모호하고 범위가 넓은 MZ세대의 경우, 언론과 매체의 의도에 따라 쉽게 획일화되는 점도 문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동질성을 가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두 개의 특성으로, 그것도 언론과 매체의 관심사나 이익에 따라 구분 짓는 것은 문제적"이라면서 "특히 언론이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로 세대를 구분 짓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매체나 언론이 MZ를 다루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요즘 것들은 이렇더라'는 권위주의적 방식의 연출 대신 MZ를 앞세우더라도 그들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게끔 보장하는 방식의 연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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