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한다. 국제회의가 아닌 단독 정상회담을 위한 방일은 12년 만이다. 북한발 안보위기까지 겹치며 한일 모두 관계 정상화가 절실했음에도 회담을 성사하려 노력한 쪽은 단연 한국이었다. 특히 양국 최대 갈등 현안인 일제 징용 배상 문제를 봉합하려 배상판결금 대위변제라는 양보안을 내놨다. 하지만 미흡한 일본의 호응 탓에 윤 대통령은 국내 반발 여론을 감수하고 회담에 나서게 됐다.
어제 공개된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와 대통령실 브리핑을 종합하면, 기시다 총리가 징용 피해자들의 요구에 '성의 있는 조치'를 추가로 내놓을 것 같진 않다. 강제동원 사과 요구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가해 기업들은 배상 참여 대신 한일 재계의 신설 기금에 기부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신(新)한일관계' 관련 공동선언이나 공동성명을 발표할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대통령실은 양국 입장차가 조율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빈손 외교'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건만 정부는 일본을 향해 되레 몸을 더욱 낮췄다. 윤 대통령이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대위변제 후 가해 기업에 변제금을 청구하는 구상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징용 배상 문제가 재점화할 거란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겠지만, 피해자들이 대위변제의 유효성을 문제 삼으며 법적 다툼을 예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대통령 발언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공수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의 성패는 일본 정부에 달렸다. 윤 대통령이 선제적 양보로 짊어진 정치적 부담을, 기시다 총리가 최대한 나눠 져야만 모처럼 맞은 관계 회복 기회를 살려나갈 수 있다. 다수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한국민 여론, 비인도적 과거사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을 두루 감안하길 바란다. 보수우익 여론과 정권의 이해관계만 의식했다간 한일관계는 회복하기 힘들 만큼 후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