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민간 기업의 생산기지 건설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도요타, 소니 등 일본 주요 대기업들도 작년 11월 '라피더스'라는 새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다.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에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한국과 대만에 빼앗긴 반도체 제조강국으로서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사활을 거는 모양새이다.
한국이 그 어느 국가보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활 도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본이 집중 육성하려는 분야가 차세대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첨단 공정인 2나노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 대만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가와도 차세대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반도체 시장 내 일본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것을 넘어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시장 판도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일본에 승기를 빼앗긴다면 한국의 현재 글로벌 반도체 리더십은 물론이고, 인공지능(AI) 전장 등 국가경제 미래에 핵심적인 연관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한국의 내일을 살아갈 미래 세대들에게 치명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미래 세대가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발판은 결국 첨단 기술의 우위 확보다. 특히 반도체는 ‘국가안보자산’으로 우리 산업과 경제의 버팀목 그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반도체 특화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들이 합심해서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데 우리도 시급히 한국형 민관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국가산업단지 조성 계획은 노무현 정부의 파주 LG디스플레이단지, 문재인 정부의 용인 SK반도체클러스터 등 과거 진보 정부의 정책을 능가하는 윤석열 정부의 결단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1990년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결국은 미국의 견제였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촉발한 이번 전쟁터에서 한국이 반도체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전열 정비가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초격차 첨단기술은 무시받지 않는 동맹의 출발점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 경쟁국은 3년, 우리는 8년이 걸린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관행과 규제의 틀을 과감하게 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 기업의 국내 시설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은 여야가 따로 없다. 정부의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은 10~20년 후 우리 경제에 활력이 될 새 전기가 될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우리 미래 세대들이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