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문동은의 복수, 초라해진 국가 형벌권

입력
2023.03.15 19:00
25면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더 글로리 드라마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
가해자 반성 이끌어내지 못하는 국가 형벌권
처벌 내용에 가해자 반성 담아내는 방안 찾아야

최근 N사의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2가 공개됐다. 그 드라마로 학폭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드라마 속에서 학폭 가해자는 사회 제도권에서 매우 잘 자리 잡았고,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2023년 피해자의 복수혈전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다는 건 뭘 의미할까? 사적 복수가 화두인 그 드라마는 정순신 변호사 가족이 사는 사회를 조명한다. 드라마 밖 현실의 가해자 아빠는 권력을 가진 법조인이었고, 가해자는 공부를 잘하는 학교 내 권력자였다. 아빠의 지인들은 법기술을 부려서 공부를 잘했던 학폭 가해자가 최고 대학교에 진학하도록 도와주었다. 드라마는 폭력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적 복수가 쉽지 않다. 사적 복수를 하면 또 다른 범죄자가 되는 사회이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형벌의 국가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법률체계가 정비되지 않았던 사회는 사건의 발생은 곧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복수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형벌 발전사에서 복수의 용인이 허용되었던 시기가 까마득한데도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사적 복수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그 배경은 국민들이 무기력하고 비겁한 국가의 형벌권에 만족하지 않아서다. 더 글로리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사람들은 드라마가 학폭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응원, 그리고 당위를 보여준다고 평가하였다. 국민은 학폭 이후 피해자가 잘 살아가도록 형사사법기관이 조력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형벌권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절차에만 집중하고, 절차상의 하자 없이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하여 잘 처리했다는 형법의 일부분만 반복 재생하고 있다. 피해자의 감정과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국민은 정확하다. 절차상 하자 없이 처벌받는 가해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반성하는 처벌이어야 하고, 피해자가 사과받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전에는 해맑음센터라는 학폭 피해 학생 및 학부모를 위한 대안학교이자 치유기관이 있다. 그곳의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바라는 것이 진정한 사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아픔을 잊고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사회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현실 속 형벌권은 학교폭력 피해자를 은둔시키고 가해자와 법기술자들의 기교만을 보고 듣고 있다. 사과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국가의 형벌권은 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고, 가해자를 향한 처벌의 내용을 재고민해야 한다. 처벌의 내용 속에 가해자의 사과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학폭뿐만 아니라 모든 폭력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감정이 외면되는 형벌권 속에서는 가정학대 피해자였던 자녀들이 노인학대 가해자로 진화하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위해 살인자가 되며, 학교폭력 가해자는 군대 내 폭력 가해자가 되며, 직장 내 괴롭힘의 주체가 된다.

범죄학자로서 형사정책의 방향성을 조언한다면, 감정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가해자를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학폭 가해자를 인지하는 것이 낙인효과라는 교장 선생님, 그것이 폭력이냐고 반문하는 교장 선생님의 무식함은 교정해줘야 할 것 같다. 학생의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는 대학의 보직 교수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형벌권이 낳은 악마와 한편이다. 국가의 형벌권이 폭력이라는 권력관계 앞에서 더욱 정의로워지면 이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형벌권은 회복을 염원하는 오늘의 드라마를 더 열심히 시청해야 할 것 같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