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탈락으로 일찌감치 짐을 싼 야구 대표팀이 썰렁한 분위기 속에 한국 땅을 밟았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반영하듯 14일 오후 5시께 인천공항 귀국 현장은 취재진만 몰렸을 뿐 평소처럼 한산했다. 팬들도 얼마 안 됐고, 야유도, 격려도 없었다. 비난보다 무서운 무관심이다.
열흘 전 “잘해서 좋은 것만 갖고 돌아오겠다”고 당차게 출사표를 던졌던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이날 귀국 후 인터뷰에서 거듭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감독은 “선수들은 정말 잘했기 때문에 비난은 나에게 다 해달라”면서 “내가 부족해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나는 비난받아도 된다”고 말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단답형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사이 선수들은 재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대표팀은 1, 2차전에서 호주와 일본에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뒤늦게 약체 체코, 중국을 잡았지만 1라운드 탈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으로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열어젖혔던 베테랑들의 ‘라스트 댄스’도 허망하게 끝냈다.
충격 여파로 이번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김현수(LG)와 에이스 김광현(이상 35·SSG)이 태극마크를 반납하기로 했다. 김현수는 13일 중국과 최종전을 마친 뒤 “이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코리아 유니폼을 입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광현 또한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금까지 국가대표 김광현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양현종(35·KIA)도 나이를 감안할 때 사실상 마지막 태극마크였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뚜렷한 한계를 노출했다. 10번째 대표팀에 뽑힌 김현수는 3경기에서 타율이 0.111(9타수 1안타)에 그쳤다. 종전 9차례 국제대회 통산 타율이 0.364에 달했던 정교한 타격이 실종됐다.
김광현, 양현종도 기대를 밑돌았다. 김광현은 일본전에 선발 등판해 2회까지 잘 버텼지만 3회에 와르르 무너졌다. 양현종은 8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호주전에 구원 등판해 아웃카운트 1개를 잡지 못한 채 통한의 3점포를 맞고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표팀의 투타 기둥이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으면서 한국 야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직도 이들이 주축으로 자리하고 있을 만큼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타자 쪽은 상황이 낫다. 메이저리거 김하성(28·샌디에이고)이 중심을 잡아주고, 이정후(25·키움)와 강백호(24·KT)가 버티고 있어서다.
문제는 투수다. 이강철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확실한 선발 보직을 정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투수가 대표팀 내에 없었다. 이 감독은 “소형준(KT), 이의리(KIA) 등 젊은 선수들이 자기 볼만 던졌어도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아쉽다”고 털어놨다.
현재 KBO리그 최고의 에이스 안우진(23·키움)이 뛰고 있지만 ‘학교 폭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 태극마크를 달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 감독도 “안우진을 안 뽑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력한 구위를 갖춘 20대 초반의 문동주(20)나 김서현(19·이상 한화), 장재영(21·키움) 등이 ‘영점’을 잡고 완성형 투수가 되지 않고서는 한국 야구의 투수 세대교체는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수확은 ‘안경 에이스’ 박세웅(27·롯데)이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