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증 촬영해 외국인 여성에 강도짓... 대법 "주민등록법 위반은 무죄"

입력
2023.03.14 12:00
"원본 아닌 촬영본 제시 땐 행사 아냐"

타인의 주민등록증 촬영본을 범행에 이용하면 주민등록법 위반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특수강도와 주민등록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41)씨에게 주민등록법 위반죄는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혐의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범죄 피해를 당하더라도 신고가 어려운 성매매 외국인 여성들에게 금품을 뺏기로 계획하고, 2022년 1월 한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 주인에게 접근했다. A씨는 손님으로 가장해 업주와 통화하면서 미리 준비한 타인 주민등록증 사진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다음날 태국 국적의 성매매 여성 B씨를 만난 A씨는 B씨를 전기충격기 등으로 위협하며 지갑과 스마트폰, 여권 등 총 458만 원 상당을 훔쳐 달아났다.

A씨는 특수강도와 주민등록법 위반뿐 아니라 과거 저지른 음주운전과 위험운전치상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그러나 A씨에게 주민등록법 위반죄는 물을 수 없다고 보고 나머지 혐의들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주민등록증 자체가 아닌 촬영본을 전송해 성매매 업주에게 보여준 행위는 '주민등록증 행사'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2심 재판부 역시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보고, 죄질이 나쁜 특수강도 범행에 대해서만 형량을 늘려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A씨는 타인 명의 주민등록증 원본을 이용해 스스로 이미지 파일을 생성한 것이 아니고, 촬영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휴대폰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제시했다"며 "결국 A씨가 행사한 것은 주민등록증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 파일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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