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비, 해운대 그리고 해운대선관위

입력
2023.03.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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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본 뒤, 순양그룹 회장으로 열연한 이성민 배우에게 빠져 버렸다. 믿고 보는 배우 이성민은 티켓박스에서 영화 '대외비'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마음 한 편이 가시방석이었다. 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당시 '해운대구선거관리위원회 과장'이 지금의 내 직책이기 때문이다.

이성민 배우가 맡은 순태는 선관위 과장에게 투표용지 파일을 받아 이를 인쇄하여 투표 결과를 바꾸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10가지라도 말할 수 있지만 허구라고 시작하는 영화에 법조문을 들이대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와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혹여나 관객 중 일부라도 선관위가 이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불신을 가지지 않을까라는 노파심 때문이다. 사실 노파심도 아니다.

선거 부정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음모론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나는 의사당 공격을 하루 종일 생방송으로 목격했다. 성조기를 든 수많은 사람이 미국 의회 의사당 창문을 부수는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선 현실이었다.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의 조사에서 선거 1년 후에도 공화당원의 71%가량은 바이든이 불법적으로 승리했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여론조사에서도 선거가 공정했다고 답한 공화당원은 12%에 불과했다. 선거관리 공무원에 대한 협박이 급증했고, NBC뉴스가 방송한 협박 전화는 절로 몸서리치게 했다. "네 자녀가 죽을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미국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2012년 대선에 부정이 있었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은 2017년 대선에서 극렬한 선관위 감시활동을 한 시민단체를 등장시켰다. 그렇게 선거부정을 외치던 단체는 정권이 바뀌면서 보이지 않았고, 반대쪽 진영의 단체가 나타나 비슷한 주장을 반복한다. 선관위 사무실 앞에서 밤낮으로 촬영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현실에서 어떤 의욕과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

영상의 힘은 세다. 폭스뉴스만 본 공화당원은 해당 뉴스를 시청하지 않은 공화당원보다 약 40%포인트 더 우편투표를 불신했다. 팩트가 어떻든 영화를 보고 진실은 드럼통에 담겨 해운대 앞바다에 던져진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쓰나미에서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죽을힘을 다하는 영화 '해운대'의 설경구처럼 불신의 바다에서 우리 선거를 구하기 위한 해운대선관위의 최선을 다짐하며 잠을 청해본다.


우재영 해운대구선관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