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너의 두 번째 새해

입력
2023.03.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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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복 많이 받아."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복?" 나의 말에 친구는 어리둥절해했다. "그래. 3월은 두 번째 새해 같아. 우리 다시 복 받자." 그제야 친구는 웃는다. "맞아. 1월보다 3월이 더 새해 같긴 해."

3월은 나에게 두 번째 새해다. 첫 번째 새해는 서로 복을 빌어주는 덕담과 새해 계획을 세우는 정도라면 두 번째 새해는 첫 번째 새해맞이보다 몸도 마음도 바쁘다. 입학과 개학 이벤트가 있다면 새 학기, 새 친구, 새 학교를 준비해야 하고 그에 따른 마음을 비롯하여 준비물도 꽤 필요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한국에서 성장하는 사람 대부분은 보통 19년간 3월이면 입학과 개학을 반복한다. 어린이집과 대학원까지 합치면 21~22년은 족히 넘는 시간이다. 더구나 당사자 외 주변인도 그 분위기에 함께 스며들게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친구는 3월이 두렵다고 했다. 두려움만큼 자신에게 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부모가 된 친구는 당분간 매일 새로운 일을 아이만큼 맞닥뜨릴 것이다. 이미 아이는 "학교 안 갈래, 재미없어" "왜 재미없어? 친구도 많고 공부도 하는데" "공부하면 재미없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아이는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한다. 나의 아이도 어린이집 3년 차가 되었다. 2월 수료식을 하고 봄방학을 지낸 후 3월 승급한 반으로 등원했다. 친구도 바뀌고 반도 바뀌고 담임 선생님도 바뀌었다. "엄마, 아직 방학이야. 어린이집 안 가도 돼." "이제 형님 반에 가야 해." "형님 안 해, 아기 할래." 아직 바뀐 환경이 낯선지 아침마다 등원 다툼 중이다. 아이들에겐 새해나 내일의 계획은 큰 소용이 없다. 당장 오늘, 지금의 계획만이 계획이며 계획과 동시에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이벤트가 없는 이도 3월은 봄의 시작과 함께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한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때. 3월이 되자 나는 지난 두 달을 돌아보았고, 내가 전혀 새로이 시작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작고 큰 계획을 세웠고 서늘한 마음이 들면 회피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며 그럭저럭 지나왔다. 축복과 축봄을 기다리면서도 그것을 향해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새해를 맞아 첫 번째 새해에 계획만 했던 일을 시작했다. 계획한 일 중 하나가 하루 원고지 10매를 쓰는 일이다. 써야 할 글이든 쓰고 싶은 글이든 10매를 쓰자 계획했다. 1매도 못 쓰는 날이 많았다. 매일 몇 매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수는 매일 쓴다는 행위와 태도를 측량하는 자가 된다. 이외에도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를 시작한다며 달리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날씨, 몸 상태, 아이 일정을 핑계 삼아 미루고 있다.

세 번째 새해는 없다. 그러니 이제 계획은 그만. 완벽한 계획이란 없고 완전한 순간도 없다. 기욤 뮈소가 쓰지 않았던가.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고. 내일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처럼 당장 오늘, 지금의 계획부터 일단 시작해야겠다.

두 번째 새해. 이젠 계획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다.


구선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