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태국은 강했다. 지난달 24일부터 3일 동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이 격돌한 'DGB컵 인도차이나 드림리그'에서 라오스는 태국을 두 차례 만나 모두 패배했다. 2019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패를 했기에 '뻔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라오스는 26일 열린 첫 경기에서 베트남을 18:1로 꺾었다. 선수도 그랬겠지만 관계자들의 뇌리에 스친 생각은 '혹시 태국도?' 하는 것이었다. 저 기세와 실력이면 태국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한일전과 관련해서 '가위바위보도 지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동남아 국가들에겐 태국이 바로 그 일본의 위치다. 스즈키컵에서 베트남팀이 보여준 것처럼 누구나 태국을 이기고 싶어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라오스는 태국과 두 번 싸워서 두 번 다 졌다. 2019년 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를 모두 합하면 네 번 연속 패배다. 은근히 기대했던 코치진들은 물론 선수들도 실망했다. 특히 선수들은 너무도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너희들 그러지 마!"
선수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라오스의 야구 역사는 10년, 태국은 그 다섯 배인 50년이다. 태국에게 졌다고 낙담하는 건 어떤 면에서 오버다. 실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정의 이유를 하나 더 쌓는 계기로 삼는 것이 옳다.
라오스 선수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경기는 지난 아시안게임과 그 내용이 사뭇 달랐다. 태국팀은 이번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 점수는 첫 게임에서는 12:5, 다시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18:5로 벌어졌지만, 태국은 결승전에서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1승의 제물'로 생각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것만 해도 라오스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수들에게 진짜 실망한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태국전에서 보여준 정신적인 측면이었다. 라오스 선수들은 이길 가능성이 있고, 잘하고 있을 때는 파이팅이 넘친다. 문제는 패색이 짙을 때이다. 이번 태국전에서 여러 번 점수를 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미 꺾여버린 마음으로는 기회를 살릴 수가 없었다. 더그아웃이 추수감사절 전야의 칠면조 우리를 방불케 할 만큼 고요했다. 흥 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필요한 것이다. 이길 때나 질 때나 한결같이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패배의 기운에 너무 쉽게 젖어버리는 모습이 이번 대회가 남긴 숙제다.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한 것은 야구에 스며있는 열정과 정신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 아니라 이길 때도 질 때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의 야구, 그리고 이만수 야구의 본질이 바로 그런데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과 과제를 동시에 안겨준 소중한 대회였다.
DGB금융그룹을 비롯해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중꺾마’라면 라오스도 언젠가는 실력과 마인드 모두에서 동남아를 호령하는 강자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