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통계청은 2022년도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출산율 '세계 꼴찌' 한국의 출산율은 2021년보다 0.03명 줄었다. 이 뉴스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언론들은 '이대로면 국가 소멸', '침몰하는 대한민국', '미래 없는 대한민국' 등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언론들은 이렇게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열심히 찾았다. 자산 형성과 대출의 어려움, 안정적 주거 마련의 어려움, 높은 양육비 등이 거론되었다.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역시 출산율이 아주 낮다. 이탈리아는 꼴찌에서 두 번째이고, 스페인도 아주 낮은 순위이다. 이들 세 나라는 결혼 시기의 지체, 출산 아동 수의 감소, 늦추어진 첫 출산 시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군의 노동시장 연구자들은 이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가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낮은 복지제도와 강하게 분절화된 노동시장 구조가 상호작용하여 생긴 현상으로 분석한다. 이 두 제도의 결합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적 특성이다. 예컨대 독일은 분절화된 노동시장 구조를 갖지만 좋은 복지제도를 갖고 있다. 미국 역시 복지제도는 빈곤하지만, 분절화된 노동시장 구조를 갖지는 않는다. 독일과 미국의 출산율은 이들 세 나라만큼 낮지 않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거의 유사한 첫 출산 연령을 보인다.
이들 세 나라는 공적인 보육시설이 빈곤하며 가족급여 역시 낮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어 비정규직이 복지제도의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 실업급여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발전해 있지 않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고용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다수의 여성노동자가 육아휴직을 누리지 못한다.
분절화된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첫 직장을 갖게 된 여성들은 장차 정규직으로 전환될 안정된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세 나라 모두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은 10%를 약간 넘어선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에 상층 이동은 어렵다. 파트타임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여성이 육아에 종사하면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갖게 될 사회적 자원은 부족하다.
다수의 젊은 여성이 직면하게 되는 고용불안정은 엄마 되기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키며 가족 형성에 부정적 영향력을 미친다. 한국만 보면, 비정규직은 한 해 100명 중 3.06명이 결혼하는 반면 정규직은 100명 중 5.06명이 결혼을 한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혼인 가능성이 1.65배 높다. 정규직의 첫째 출산율은 4.07%, 비정규직의 첫째 출산율은 2.15%이다.
요컨대 생애 경로에서 여성의 이중구조가 존재한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된 여성들은 비교적 일찍 엄마 되기를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엄마 되기를 연기한다. 가족주의적 복지와 불안정하고 분절화된 노동시장은 특히 2차 노동시장에 위치한 여성들의 엄마 되기를 늦추며 가족 형성을 방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장 연구자들은 육아와 고용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맞벌이 부부를 지원하는 가족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비정규직에게 수급권을 부여하는 복지제도의 개혁, 상용 파트타임을 증가시키는 고용정책, 분절화된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 등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