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아빠를 둔 아이가 있다.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이번에 우리 아빠가 피해자 억울함을 풀어줬어.” “우리 아빠는 사회악을 처단하는 사람이야.” “우리 아빠가 묻힐 뻔한 사건 내막을 파헤쳤어.” 이런 자랑이라면, 친구들도 모험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전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 판결문을 보면, 고교생 아들의 아빠 자랑 이유가 희한하다. 평소 늘 아빠 자랑을 했다는데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했단다.
정 변호사가 뇌물을 받아가며 검사 생활을 했는지는, 검찰이 늘 그렇듯 제 식구는 수사할 리 없으니, 알 수 없다. 다만 과장이나 허풍이라 해도 ‘뇌물 받는 아빠’ 자랑은 상식의 하한선을 파괴한다. 검사의 아들은 아빠에게서 정의롭고 공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거나, 그것이 검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이라는 가정교육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설사 뇌물을 받았다고 해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되는 부끄럽고 부패한 일이다. 그런데 자랑거리로 여겼다. ‘뇌물을 받는다’는 건 ‘남이 굽신거린다’는 뜻이고, 아들은 아빠에게 이런 ‘권력’이 있다는 데 우쭐했던 것 같다.
검사 집안의 ‘가정교육’을 엿볼 수 있는 이 사건은, ‘일그러진 검찰’의 모습을 반영한 거울이기도 하다. 검사가 오로지 ‘권력’만을 상징할 때, 사회는 얼마나 뒤틀리는가 말이다.
검찰이 ‘권력’의 화신임은 수사대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민들을 괴롭히는 민생범죄 단죄는 뒷전이고 늘 정치권 수사에 검찰력 대부분을 쏟는다. 정치권 수사 중에서도 야권 수사에만 집중한다. 문재인 정부와 야권에 대한 수사는 열손가락이 부족할 만큼 셀 수가 없는데,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나 여권에 대한 수사는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의 균형감과 자기 통제력도 사라졌다.
수사 대상(대부분 야권)이 정해지면, 때려눕히고 이겨 먹는 게 우선이다.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로는 이제 성에 안 차는 듯싶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출근길에 야당이나 피의자(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공개적인 입씨름을 하고, 구속영장에 ‘내로남불’ ‘아시타비(我是他非)’ ‘시정농단’이라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문구를 쓰는 지경이다. 처신과 이성의 끈을 한 가닥 붙들고 있던 때의 검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검찰 권력이 득세하며 잃은 건 무엇인가.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16위에서 24위로 8계단 하락했다. ‘정치 문화’ 부분 하락이 컸는데, “라이벌 정치인들을 쓰러뜨리는 데에 정치적 에너지를 쏟는다”고 분석했다. ‘라이벌의 몰락’, 이것이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 검찰의 거의 유일한 쓰임새다.
검찰이 정치적인 수사에만 매달리는 동안, 사회를 맑게 하는 수사기관의 기능은 잊혀졌다. 서민 생활을 파탄으로 내몬 전세사기와 같은 범죄들이 오랜 기간 제어 없이 지속돼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이 민생범죄에 대대적인 정보 수집, 인지 수사, 기획 수사를 공표하고 실행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사 아들이 아빠 권력을 자랑하며 학교폭력을 가할 정도로, ‘검찰 권력’의 영향이 실개천처럼 사회 곳곳에 흐르는 동안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