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끝 분신 80대 결국 숨져... 이번에도 정부·지자체 "까맣게 몰랐다"

입력
2023.03.06 00:10
10면
동거인 사망, 생활고 겪다가 극단 선택
복지망도, 주민센터도 위기 포착 못 해
"신청주의 기반 복지 한계 다시 드러내"

생활고에 시달리다 분신한 80대 여성이 끝내 숨졌다. 오피스텔 관리비를 여러 달 체납하고, 주민센터를 찾아 생활고를 토로하는 등 위험 징후는 뚜렷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한 번도 포착되지 않았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잊을 만하면 취약계층의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신청주의’에 기반한 국내 복지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새벽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분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김모(83)씨가 2일 사망했다. 당시 화재는 스프링클러 설비가 작동하면서 20분 만에 꺼졌지만, 김씨는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왔다.

김씨는 15년 정도 함께 살던 동거인 A씨가 지난해 4월 숨지면서 주거 불안과 생활고에 내몰렸다. 그가 거주하던 오피스텔은 A씨 가족 소유였는데, 동거인이 사망하자 가족 측은 김씨에게 퇴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의 수입은 매달 30만 원씩 들어오는 기초연금이 전부여서 자립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실제 그가 지난해 7월부터 8개월 동안 미납한 오피스텔 관리비만 134만 원이나 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80대 독거노인의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단전ㆍ단수 △사회보험료 체납 등 39개 지표를 토대로 복지 지원이 시급한 대상자를 찾아내 지자체에 통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보건복지부 전산시스템상 오피스텔은 아파트, 연립ㆍ다세대주택 등의 공동주택과 달리 거주자의 체납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김씨의 관리비 체납 사실을 지자체는 까맣게 몰랐고, 위기 가구 대상에서도 누락됐다.

김씨가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는 지난해 9월 주민센터를 찾아 “가사도우미 일이 힘들다”며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상담을 받았다. 이에 주민센터 측은 기초생활수급 신청에 필요한 서류 등을 알려줬지만, 김씨는 후속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한다. 통상 기초수급에는 임대차계약서, 소득ㆍ재산 확인 서류, 부양의무자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등이 필요해 번거로운 서류 작업에 가로막혀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심사에 필요한 소득, 자산 등은 개인정보라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수혜자가 직접 까다로운 절차와 조사를 거쳐 결핍을 증명해야 하는 공공부조 신청주의의 맹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설계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나광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