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의 상황이 우크라이나군에 급격히 불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서쪽을 제외한 도시 외곽 3개 방면을 점령했다면서 "바흐무트는 사실상 포위됐다"고 공언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도 바흐무트 주민들을 바깥으로 대피시키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철수는 없다"며 도시 사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러시아는 바흐무트 점령이 코앞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투를 주도하는 러시아 용병업체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바흐무트는 사실상 포위됐다. 병사들을 구하고 싶다면 우크라이나군은 후퇴하라"고 3일(현지시간) 밝혔다. 주변 마을 파라스코비우카, 바슈키우카 등을 이미 점령했고, 바흐무트를 향해 더 깊숙이 침투해 가고 있다는 게 러시아군 주장이다.
바흐무트를 다른 도시와 잇는 교량도 줄줄이 파괴됐다. 영국 국방정보국은 "바흐무트와 차시우야르를 연결하는 다리를 포함해 주요 교량 2개가 최근 폭파됐다"고 4일 발표했다. 차시우야르에서 바흐무트로 향하는 다리는 바흐무트 시내를 중심으로 주둔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핵심 보급로로 알려져 있다.
바흐무트 시내 전투는 더 거칠어졌다. 주택 등 건물에선 시시각각 불길이 치솟고 있다고 외신들은 일제히 전했다. 올렉산드르 마르첸코 바흐무트 부시장은 "도시가 거의 파괴됐다. 전쟁이 영향을 주지 않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전기와 가스, 물 등은 이미 공급이 끊겼다. 인도적 지원이 드물게 이뤄졌지만, 바흐무트가 고립되면 이마저도 어려워진다.
바흐무트를 떠나지 않고 버티던 주민들도 결국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마르첸코 부시장에 따르면, 현재 이곳에 머무르는 주민은 4,000~4,5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주민은 우크라이나군이 임시로 설치한 부교를 이용해 바흐무트 중심부에서 4~5㎞ 떨어진 크로모브 마을로 넘어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익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은 "민간인이 차량으로 바흐무트를 떠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도보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도 바흐무트 전황이 불리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크라이나군은 4일 "도시를 포위하려는 러시아군의 공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나자렌코 우크라이나 방위군 부사령관은 "바흐무트에선 매시간이 지옥과 같다"면서도 "지난 며칠 동안 우크라이나군이 반격 노력을 쏟은 덕분에 최전선은 안정됐다"고 현지 방송 키이우24에 말했다.
'바흐무트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순환 배치에 따라 일부 병력 조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바흐무트를 버리고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우크라이나군 설명이다.
다만 러시아군이 부쩍 기세를 올리고 있어 우크라이나군의 패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 국방부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도네츠크주 남부 보스토크 부대의 전방 지휘소를 시찰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장소와 시간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바흐무트와 멀지 않은 곳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쇼이구 장관이 우크라이나 땅에 배치된 러시아군 부대를 찾은 건 이례적이다. 완전한 승기를 잡기 위해 군 사기를 진작하고 독려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쇼이구 장관은 군인들에게 훈장을 나눠주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존엄하게 싸우라"고 말했다.